▶ 직장일·집안일에 남편은 늘 폭군처럼 굴어 주변선 환자에만 관심… 삶이 온통 뒤죽박죽 전문가들“힘든 것 감추면 우울증 등 역효과”
▶ 배우자 간병은 ‘지옥의 롤러코스터 타기’
미국 내 간병 여성의 수는 줄잡아 4,000만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
병든 가족을 돌보는 여성의 수는 생각보다 많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간병 여성의 수는 줄잡아 4,000만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 사실 병든 남편의 뒷바라지는 ‘평생 반려자’인 아내가 감내해야 할 당연한 의무로 여겨진다. 이 버거운 의무를 수행하는데 조금이라도 허술한 구석을 보였다간 ‘못된 여편네’로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이다.
주변의 관심과 배려도 온통 병자에게 쏠리게 된다. 친구와 지인은 물론 가까운 친척들의 안부인사는 거의 예외 없이 “남편은 좀 어때?”이다. 직장 일과 집안 살림에 남편 병구완까지 하느라 초주검이 된 간병인에게 관심을 쏟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배우자를 돌보아야 하는 여성의 형편은 아무리 좋아봤자 엉망진창이다. 평상업무와 사회생활이 정상궤도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수면습관, 운동 스케줄, 가계관리까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한 전문가의 말대로 배우자 병구완은 지옥의 롤러코스터 타기만큼이나 괴롭다. 하루가 멀다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터지고 충족시켜 주어야 할 환자의 새로운 요구가 생긴다. 반대로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의 필요와 욕구는 늘 축소조정 상태다.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의 심리치료사 다이애나 덴홀름 박사에 따르면 결혼생활이 평탄치 못했던 부부의 경우 배우자 병간호에 따르는 도전은 더욱 커진다. 평소 아내에게 못되게 굴던 남편은 중병이나 난치병이 찾아들면 아예 폭군으로 변한다. 덴홀름 박사가 인터뷰한 세 자녀의 엄마이자 할머니인 한 식당 종업원은 폭언을 일삼던 남편의 병구완을 떠맡은 후 46년간의 결혼생활 중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장암과 중증 당뇨병, 뇌졸중의 ‘삼중폭탄’을 맞은 남편은 주변의 도움을 한사코 마다했다. 아내가 힘에 겨워 쩔쩔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시댁 식구들에게 “도와주고 자시고 할 일이 뭐 있겠느냐”며 헛소리 해대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녀의 속은 뒤집어졌다. 온갖 막말을 퍼부으며 자신을 종 부리듯 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사려 깊은 척 딴청을 부리는 남편의 위선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집안의 생계유지를 위해 온종일 고된 식당 일에 시달리고, 갈수록 입담이 험해지는 남편을 돌보느라 하루의 남은 시간을 허둥대다 보니 그녀의 건강 역시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어느 결엔가 한시바삐 이 생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자신이 그런 몹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덴홀름 박사는 평소 다정다감하던 남편이 병에 걸린 후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도 그런 경험을 했다. 덴홀름 박사는 11년 반 동안 남편의 뒷수발을 했다.
한때 건장하고 활기차며 지적이고, 사랑으로 충만했던 남편은 대장암, 울혈성 심부전증, 신부전증, 중증 관절염, 요도관 감염, 통풍, 혈전, 혈압부조와 파킨슨씨병 등 온갖 중병들로부터 ‘집단몰매’를 맞은 후 성격 변화를 일으켰다. 병마에 짓눌려 성격마저 심하게 망가져버린 남편을 직접 돌보며 전문 직장인으로 계속 활동하기란 불가능했다. 한동안 고심한 끝에 그녀는 남편을 택했다. 평소 자상하던 남편은 병이 깊어지자 징글징글하도록 그녀의 애를 태웠다. 병원에 갈 때마다 부득부득 운전대를 잡겠다며 고집을 피웠고, 아내가 자신의 뜻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결국 덴홀름 박사는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남편은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은 채 숨지기 이틀 전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중병이나 심각한 고통은 종종 분노와 무기력감, 우울증을 초래한다. 게다가 그 병이 불치병일 경우 환자는 거의 대부분 자아감을 잃게 된다. 존재 이유에 상처를 입은 남편의 분노는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로 향하게 된다. 물론 배우자가 1순위다. 아내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아예 없어서가 아니라 배우자야말로 가장 ‘안전한’ 화풀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덴홀름 박사는 긴 병을 간호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상대에게 경고신호를 보내거나 비난, 동정 따위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을 상호 소통수단을 채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의견일치가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씨름을 벌이지 않기로 합의하는 것을 비롯, 남편과의 사이에 기대와 이해를 이뤄낼 의사소통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덴홀름 박사는 절대 “우리 얘기 좀 해요”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같은 서두는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반영하는 말이고, 따라서 상대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감정을 돋우는 역효과를 낼 뿐이다.
병든 많은 남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에게 돈 관리를 맡기려 들지 않는다. 끝까지 돈을 움켜쥐고 있어야 그나마 무력감을 털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덴홀름 박사는 남편과 입씨름을 하는 대신 은행과 소셜시큐리티국, 원호처, 심지어 법률구조협회에까지 돌아다니며 이 문제를 조용히 처리했다. 덴홀름 박사는 병든 남편과의 심리적 ‘상호의존’을 피하라고 누차 강조한다. 상호의존이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것을 베푸는 사람 사이의 과도한 정서적 의존성을 뜻한다. 덴홀름 박사는 남편을 간병하는 여성에게 ‘순교자 의식’을 갖지 말 것도 아울러 권한다. 힘겨워 죽을 지경이면서도 늘 웃음기를 담은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감추면 감출수록 주변의 이해를 구하기도 힘든 법이다. 닫힌 문 뒤쪽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외부인들은 알 도리가 없다.
덴홀름 박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무리를 감수하거나 원하지 않은 역할을 떠맡는 것 또한 어리적은 짓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을 산 제물로 통째로 바친다 해서 남편의 건강이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너무 이기적이고 냉정한 충고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덴홀름 박사의 답변은 이렇다. “병수발을 오래하다 보면 분노와 죄책감이 교차하면서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자신도 모르게 병든 남편을 학대할 수도 있다. 우선 내가 건강하고,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병구완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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