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돈 내고 버리라니, 국민을 뭘로 보고!” 1995년 정초에 난리가 났다. 그해 1월 1일 전국에 도입된 쓰레기종량제 때문. 그전까지 쓰레기는 ‘그냥’ 버리는 거였다. 처리비용이 재산세액에 따라 일괄 부과됐다. 매립지가 포화상태가 되자 정부는 쓰레기봉투를 판매해 배출량에 따라 비용을 물리기로 했다. 봉투가 그때도 몇 백원이었으니, 꽤 부담이었다.
■ 국가 주도로 종량제를 일괄 시행한 건 세계 최초. “물품 구입 때 돈이 드는 것과 같이 버릴 때도 버리는 양만큼 돈이 듭니다. 쓰레기는 곧 돈입니다”(국정홍보 방송 ‘대한뉴스’ 중에서). 돈 앞에서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멈추고 쓰레기를 덜 버리는 데 힘을 쏟았다. 1년 만에 하루 평균 생활쓰레기 배출량이 27% 줄고, 재활용품 배출은 35% 늘었다. 결과적으로 모두의 이익이 됐다. “종량제로 1995년부터 8년간 21조3,500억 원의 경제 효과가 창출됐다”(한국환경연구원)고.
■ 종량제가 위기를 만났다. 전쟁으로 비닐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종량제봉투가 품절되거나 가격이 오를 거라는 소문이 퍼졌다. ‘쓰봉’(쓰레기봉투) 사재기가 시작됐다. 이달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자치구별 판매량은 최근 3년간 평균 판매량의 5배. 생수, 라면, 화장지도 아닌 ‘쓰봉’ 사재기라니. 결국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나섰다. “봉투 재고는 충분하고, 가격 인상도 없을 것이며, 봉투가 모자라면 일반봉투를 쓸 수 있게 하겠습니다.”
■ ‘쓰봉’은 여전히 몇 백원. 폐기물관리법상 재판매 과태료가 최대 300만 원이라 웃돈 받고 팔기도 어렵다. 이번엔 돈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왜 ‘쓰봉’ 때문에 전전긍긍할까. 누군가는 “피란 가면서 교통신호 지킬 기세”라고 했다. ‘쓰봉이 없으면 →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다’는 규칙을 31년 만에 초고속으로 내재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장소 쓰레기통 주변에 생활쓰레기 투기 적발용 CCTV가 설치돼 있고, “음식물쓰레기 그냥 버렸는데 수거 담당자가 추적해서 찾아왔다더라” 같은 괴담이 나도는 감시사회에선 그 정도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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