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얼쑤 비스트로 조성주 셰프
대한민국 금융의 심장부, 여의도의 점심시간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 사이에서 식당들은 회전율이라는 단 하나의 지표를 향해 질주한다. 점심엔 쏟아지는 손님을 쳐내고, 저녁엔 비즈니스 접대를 위한 화려한 상차림이 이어진다. 이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공간 한복판에 조금은 이질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이가 있다. '얼쑤 비스트로'의 조성주(42) 셰프다. 그는 이곳에서 '세시'와 '절기'를 논하며 직접 담근 장과 젓갈로 술상을 차려내고 있다.
■ 전통주 매력에 빠져 한국전래음식연구회 고문 문하생으로조 셰프의 이력은 흥미롭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학 강사였다. 숫자와 논리가 지배하던 그의 삶에 균열을 낸 것은 전통주였다. 원래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외가 식당의 내력을 은연중에 물려받은 탓인지 장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그를 외식업의 세계로 이끌었다.
"2010년쯤 막걸리 열풍이 불 때였죠. 전국 양조장을 다니며 우리 술의 매력을 발견했는데 정작 어울리는 제대로 된 한식 안주를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게 시작이었죠."
2014년 홍대에서 '얼쑤'를 열고 본격적인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2019년 '백곰막걸리'의 이승훈 대표와 손잡고 압구정에서 전통주와 한식의 페어링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다. 화려한 조명 뒤에서도 그는 늘 '한식의 원형'에 대해 고민했다. 요리 기법은 독학으로 메울 수 있었으나, 한식의 뿌리인 발효와 장에 대한 이해는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가 선택한 건 집요한 탐구였다. 조 셰프 작업은 단순히 고향인 충청도의 맛을 재현하거나 특정 지역색을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한식을 하나의 거대한 지형으로 보고, 그 원형이 되는 고조리서부터 현대적인 조리 기법까지 전방위적으로 연구한다.
9년째 한국전래음식연구회 고문인 이말순 선생의 문하에서 절기 음식을 배우고 있는 이유도 지역적 특수성보다는 한식을 관통하는 세시와 절기라는 보편적인 원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다. 내로라하는 스타 셰프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막내다.
"체계화된 교육기관도 좋지만 선생님 댁에서 제자들과 수다 떨며 직접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는 그 삶의 맥락에서 더 큰 영감을 얻습니다. 매년 같은 음식을 반복해도 해마다 보이는 게 다르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야 조금씩 피부에 와닿는다고 할까요."
그는 특정 지역의 향토 음식을 박물관처럼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원형의 에너지를 빌려 현대적 주안상에 걸맞은 섬세한 미감으로 치환해내는 '동시대적 해석'에 집중한다. 서양의 프렌치 기법이나 현대적인 장비를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면서도, 그 결과물만큼은 철저히 한식의 범주 안에서 발현되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고집이 그의 음식을 지탱하는 힘이다.
"많은 분이 한식의 매력을 투박함과 넉넉함에서 찾곤 하지만, 제가 곁에서 지켜본 대가들의 음식은 그 어떤 장르보다 예민하고 정교한 결을 품고 있더군요. 재료의 수분을 어느 정도 남길지, 계절에 따라 소금의 염도를 어떻게 미세하게 조정할지, 그리고 그 미미한 차이가 발효라는 시간을 통과했을 때 어떤 결과물로 치환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곧 한식의 섬세함이라 믿습니다."
■ "한식의 폐쇄적 전수 체계 아쉬워… 우리 술만의 풍미 살려야"그의 주방에서 식재료는 버려지는 법이 없다. 회를 뜨고 남은 도미 뼈와 머리, 내장으로 젓갈을 담가 3년을 숙성시키고, 장아찌를 담그고 남은 간장물은 다시 초장의 베이스가 된다. 다시마 육수를 내고 남은 다시마는 전복 내장과 섞어 부각으로 튀겨낸다.
"한식은 원래 버릴 게 없는 음식이에요. 식재료를 알뜰하게 쓰기 위해 고안된 지혜가 지금은 가장 강력한 감칠맛의 무기가 되죠."
대표적인 게 '찌엄장(묵덕장)'이다. 메주가 떨어졌을 때 봄철 김칫국물에 메주 가루를 풀어 속성으로 익혀 먹던 이 투박한 음식을 그는 현대적인 술상의 킥으로 변모시켰다.
가리비 찜 하나에도 생마늘, 군마늘, 튀긴 마늘 세 가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 얹고, 라드와 땅콩유, 참기름을 배합해 직접 만든 향미유로 풍미를 완성한다. 겉보기엔 평범한 한식 안주나 반찬 같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레이어의 공정이 숨어 있다.
조 셰프가 이토록 우직하게 한식에 매달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 음식의 전수 과정이 지닌 폐쇄성 때문이다. 한식의 깊이를 탐구하려는 젊은 요리사들은 늘어나는데, 정작 대가들의 지혜는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이 아닌 개인적인 인연이나 사적인 모임을 통해 파편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는 정보의 독점과 그로 인한 알력 다툼이 한식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말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지만, 정작 안을 들여다보면 무척 폐쇄적입니다. 대가들의 귀한 비법이 사적인 인맥을 통한 추천이나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머물죠. 심지어 제자들 간의 알력이나 갈등 때문에 그 귀한 맥이 흐려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제대로 된 원형을 접하고 싶어도 들어갈 틈이 없는 구조라 안타깝죠."
전통주 전문가로서의 식견도 날카롭다. 그는 지난 10년간 전통주 시장이 확실히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젊은 양조인들이 와인이나 사케를 공부하며 부재료를 다양하게 쓰고 통제된 환경에서 술을 빚기 시작한 덕분이다. 하지만 그는 사케가 가진 극강의 섬세함을 쫓는 흐름 속에서도 우리 술만이 가진 거칠고 복합적인 누룩의 맛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케의 방향성을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술만이 가진 효모의 역동성 또한 중요한 자산입니다. 저는 '히읗 양조장'의 조태경 대표처럼 여전히 항아리로만 소량으로 술을 빚는 장인들을 응원해요. 그런 독보적인 가치를 증명하는 술이 많아져야 한식의 지평도 함께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 극강의 회전율 전쟁에도 '대기만성' 요리 연구홍대와 압구정을 거쳐 여의도에 둥지를 튼 지 3년째. 각 지역마다 손님들의 성향은 확연히 달랐다. 홍대가 젊고 감각적이었다면, 압구정은 세련된 호기심이 가득했다. 반면 여의도는 보수적이면서도 까다로운 접대 문화가 지배적이다.
"처음에는 양이 적다는 타박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제 스타일을 이해해주시는 단골들이 생겼어요. 와인 콜키지가 당연시되는 여의도 문화가 의아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음식과 와인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다만 언젠가는 우리 술과 우리 음식이 완전히 하나로 녹아든 주안상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는 버리지 않고 있죠."
조 셰프는 스스로를 '천천히 걸어가는 요리사'라고 정의한다. 장을 담근 지 8년이 되었지만, 그에게는 고작 여덟 번의 경험일 뿐이라는 겸손이다.
"장을 담근다고 해봤자 1년에 한 번입니다. 8년이면 고작 여덟 번이죠. 그 안에서 대단한 다양성을 주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간장 같은 경우도 최소한 진장을 만들려면 7년이 필요하다고 해요. 한식은 결국 평생을 두고 완성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지금부터 준비해나가면 20년 안에는 좀 더 간결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한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죠."
효율이 최고의 가치로 추대받는 여의도 빌딩 숲, 그곳에서 조 셰프는 자신만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그가 쌓아 올린 이 두꺼운 시간의 겹들이 훗날 우리 한식의 지평을 얼마나 더 정교하고 단단하게 넓혀놓을지, 벌써부터 그의 다음 계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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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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