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로에서 만난 행인들의 발걸음에 시선이 흘러갔다. 필자는 산책자들의 뒤에서 그들의 걸음을 관찰했다. 놀랍게도 걸음이 같은 사람이 없었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행인들의 얼굴을 보기 전에 걸음과 뒷모습을 먼저 보았다. 사람의 뒷모습이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뒷모습은 침묵하지만 얼굴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듯했다. 가시적인 앞모습이 아니라 이면을 볼 수 있을 때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람이 지나온 흔적의 결합체가 그의 뒷모습이 되는 게 아닐까.
사람의 진실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담겨 있다. 뒷모습은 어떤 것으로도 포장할 수 없다. 사람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척도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타인이 볼 수 없는 홀로 있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가장 진솔한 자신과 마주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가의 문제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척도다. 뒷모습이 타인에게 노출되었을 때 자신의 실체를 대면하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부모가 어떤 가치와 신념으로 사느냐에 따라 자녀들도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공원 산책로에서 호수 앞을 지날 때였다. 노부부는 아름드리나무 그늘 밑에서 의자에 앉아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의 땀을 닦아주며 모자도 씌워주고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노부부에게서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말을 듣는 듯했다. 노부부가 걸어온 여정이 그들의 표정 속에 담겨 있었다. 걸음 속도를 늦추고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표정과 태도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그들의 뒷모습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노부부와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얼굴과 표정이 오누이처럼 서로 닮았다. 삶의 무게를 나누며 폭풍을 함께 건너온 시간과 다양한 파도를 서핑하며 흘렸을 노부부의 눈물이 느껴지는 듯했다. 노부부는 삶을 스친 바람을 지나오며 그들만의 정원에 견고한 뿌리를 내린 게 아니었을까. 그들은 서로를 향해 말없이 땀을 닦아주었다. 배우자 중 누군가 먼저 떠나거나 질병으로 누워있으면 산책하거나 동행할 수 없다. 노부부처럼 배우자와 함께 산책하며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진가는 머물 때가 아니라 떠난 후에 그가 남긴 뒷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각자 처한 삶의 영역에서 자기의 몫을 다하고 내려놓았을 때 뒷모습을 통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학생은 학교를, 교사는 교단을, 운동선수는 리그를 떠났을 때 존재의 무게와 가치를 알게 된다. 머물렀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머문 자리가 향기 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얼마나 복된 삶인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산책 코스를 완주하고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남길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염두에 두고 겸비하고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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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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