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송나라에 저공이란 사람이 있었다. 원숭이를 기르는 것이 취미였는데 수가 늘자 먹이인 도토리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한가지 꾀를 냈다. 오늘부터 먹이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줄인다고 얘기하자 원숭이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아침에는 4개로 늘리는 대신 저녁에는 3개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원숭이들은 뛸듯이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삼모사’의 어원이다.
기원전 2세기 아르메니아에는 티그라네스라는 왕이 있었다. 이 왕은 한 때 메소포타미아를 침공해 영토를 페르샤만까지 넓히는 등 로마 동쪽에서는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힘이 갈수록 커가자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게 된 로마는 루쿨루스라는 장군을 보내 아르메니아를 공격했다. 국경에서 달려온 파발이 이 급보를 전하자 티그라네스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도 말라면서 이 파발의 목을 쳤다. 이를 본 신하들은 아무리 루쿨루스가 수도에 가까이 와도 아무도 왕에 알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로마에 항복하고 아르메니아는 그 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송나라와 아르메니아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 미국에서 되풀이 되려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일본과 유럽, 한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이들은 협상 타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있으나 이는 이게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최악의 사태를 피했기 때문이다.
협상 타결로 이들의 수출 품목 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행정부 이전 관세가 2% 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은 10% 포인트 이상 올라간 것이고 이는 1930년 스무트 홀리법 제정 후를 제외하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은 것이다.
지난 4월 도널드가 ‘해방의 날’을 선포하며 관세를 대폭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동안 비즈니스 지도자들은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부림쳐왔다. 상품에 세금을 물리면 상품의 가격은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며 지출이 줄면 기업의 매출과 순익이 감소하고 그렇게 되면 경기가 둔화된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도널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제적 진실이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주 발표된 고용 보고서는 7월 신규 일자리가 고작 7만3천개 늘어났다고 밝혔다. 더 충격적인 것은 5월과 6월 일자리 증가 폭을 25만8천개나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나마 늘어난 일자리도 무역과 관세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의료와 복지 관련 분야가 대부분이다. 제조업 일자리는 7월 1만1천개, 5월과 6월 2만6천개 등 3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구직자들의 체감 지수도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링크트인 조사에 따르면 일자리 찾는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코로나 초기인 2020년 4월 이후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가 금리 조정의 기준으로 삼는 개인 소비 지출 물가 지수(PCE)는 5월, 2.4%, 6월 2.6%, 변동성이 작은 핵심 PCE 지수는 2.8% 등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는 침체하면서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는 관세를 올리는 이유의 하나로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들었지만 제조업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은 왜일까. 전문가들은 관세율이 수시로 변하는데다 법이 아니라 행정 명령으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음 행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투자를 꺼리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 도널드는 관세 부과의 근거로 ‘국제 비상 경제권법’(IEEPA)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법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는 소송이 연방 항소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 주 이 사건을 심리한 판사들은 이 법에 대통령이 관세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며 이를 허용할 경우 세금에 관한 전권을 의회에 주고 있는 연방 헌법이 형해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연방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면 지금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관세 소동은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
이런 나쁜 뉴스에 대한 도널드의 반응은 아르메니아의 왕 티그라네스와 다르지 않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고용통계국장 에리카 메켄타퍼를 해임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가 정치적인 이유로 통계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메켄타퍼는 그전까지 민주 공화 양당 행정부에서 일하며 공정하고 비정치적인 분석가란 평을 받던 인물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나쁜 소식을 가져오는 메신저를 죽일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관세의 해악을 인정하고 진로를 수정해야겠지만 관세를 종교로 신봉하는 도널드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국인들은 머지 않아 트럼프노믹스의 참맛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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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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