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가 안되었으면 시인이 되었겠지...”
이우환의 크고 작은 붓과 젊은 시절 모습
작가 이우환이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째로 지배했다. 1층부터 9층까지 나선형 갤러리는 물론 두군데 부속 갤러리까지 전시된 이우환의 조각, 회화, 설치작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뉴욕한인들에게도 자랑이 되고 있는 작가 이우환은 어떤 사람일까.
▲한 시간의 산보
6월 28일 저녁시간, 이우환(75·Lee UFan)은 낙엽이 가득 담긴 통을 들고 붉은 단풍이 지천으로 깔린 가을 숲 앞에 잠시 서있다. 이윽고 가을숲 사진이 확대된 유리벽 발치에 낙엽을 뿌리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혀서, 꿇어앉아서, 다시 주워서 설치하기도 여러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갤러리의 ‘이우환의 라이팅’(The Writings of Lee UFan)전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가을 숲 앞에 낙엽이 떨어졌다. 뜨거운 한여름에 배달된 낙엽은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던 기자는 물었다.
“선생님, 왜 낙엽을 전시장 바닥에 뿌리세요? 무슨 의미입니까?” “대답하면 맥이 빠지지, 그냥 지켜봐야지.”한참 후 그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신라시대 원효대사를 만나러 아들 설총이 절로 찾아갔다. 뜰에서 마당을 쓸고있는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내가 쓸던 마당을 깨끗이 쓸어라, 내가 너의 아버지를 찾아주마 하고 절안으로 들어갔다. 한참후 말끔하게 쓸린 마당을 본 스님은 쓸어모아놓은 낙엽을 가져다 마당에 뿌렸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방긋 웃었다. 그 아버지도 같이 방긋 웃었다. 마당에 점점이 떨어진 낙엽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것이다. 반짝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뜰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예술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다.”이날 전시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6월 24일 시작되어 오는 9월 28일까지 석달간 열리는 이우환 회고전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와 연계하여 열리는 것이었다.이우환이 한글로 쓴 편지, 메모, 에세이와 카탈로그, 저서 9권 등 글 외에도 젊은시절 사진과
그의 크고 작은 붓 20여개가 전시 중이다. 가운데 벽의 영상에는 그가 쓴 시 낙엽이 나온다.
“화가가 안되었으면 시인이 되었겠지”하는 그의 말처럼 현재 현대미술의 중심인 구겐하임 미술관에 그는 온통 철학적인 시를 썼다. 관객들은 세워진 철판을 사이에 둔 두 개의 돌, 깨진 유리판 위에 얹힌 돌, 선 하나, 반복된 점,
혹은 단 하나의 점뿐인 캔버스에 의아해 한다. 그린 것보다 안그린 것이 더 많다. 열심히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다가 물어본다. 잘 모르겠어, 이것이 도대체 뭐야? 그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난 예술인이다. 빵이나 꽃은 못만들어도, 다른 경제나 과학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자부한다. 첫째 예술은 시각적, 신체로 느낀다는 것으로 출발한다. 예술은 그 작품을 통해서 장래를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구겐하임은 내게 희안하게, 우연히, 산보길을 마련해주었다. 보통 화이트 큐브(흰 사각방)에 작품을 전시해왔으나 이곳은 회랑을 돌아가는 산길, 비탈길처럼 의외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진열해야 했다. 관람객들이 먼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받으리라 생각한다.”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불과 30분~한시간동안 산보, 여행을 했더라도 일상을 떠나 우주를 생각했으면 한다. 여러 사람들이 이 의미는 무엇인가? 물론 그런 질문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전문가들에 해당된다. 그냥 느끼고 보고 이게 뭘까 하는 묻는 느낌으로 충분하다”
▲돌을 찾아 전세계로
이우환은 40년 역사를 담은 회고전을 위해서 한달여 전부터 뉴욕에 와서 돌을 구하러 다녔다.“새로운 곳에서 작품을 설치할 때 항상 현지에서 돌을 구해 작품을 만든다. 이번에도 롱아일랜드 햄튼 지역에서 돌을 구했다.”그는 돌이 잘 생기면 돌만 보이므로 이미지가 강한 돌은 피하고 중성적인 돌을 구한다. 이번에도 회고전이 개막된 후 바로 유럽으로 간다. “보통 1년에 7개월은 유럽에 있다. 엄청 돌아다닌다.” 만 20세에 일본에 간 것이 50년이 넘었다. 도쿄 바로 밑에 있는 가마쿠라에 살며 그곳에 작업실을 두고 독일, 이태리 등을 돌아다니며 돌을 찾는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훈련을 해왔다. 어떤 것은 간단히 철판과 돌을 배치하기도 하고 공장에서 빌려온 철판을 돌과 살짝 서로 만나게 하기도 했다. 그림도 극히 일부만 그리고 살짝 포인트만 시켜주는 작업을 했다.”“달이 떴을 때, 예쁜 꽃이 피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다.
예술인은 오래 볼 수 없을까 한다, 거기서 작품이 나온다.” 예술가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 강조하는 그는 원래 문학을 하고 싶었다.“그림을 그리리라고는 생각도 안해 봤다. 대학 1학년 때인 1956년 삼촌이 일본에 있었는데 무
척 아팠다. 아버지가 삼촌에게 한약을 가져다주라고 해서 여름방학때 일본에 갔다.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밀항하여 일본으로 갈 때다. 그런데 삼촌이 이곳에 살며 공부를 하라고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일본과 독일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했다.”
1936년 경남 함안 출생인 이우환은 서울미대를 다니다가 일본 니혼대학 철학과에서 니체와 하이데거를 공부한 것이다. 1970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형성된 모노하(物派, 사물이 지닌 본성 그대로 보여주기)에 대한 글을 쓰며 이론적 확립에 기여했다. 그의 미니멀 설치작은 탄탄한 철학적 이론 위에 선 것이다. 자연히 그는 작가이자 이론가, 철학가로 주목받았고 유럽과 일본을 오가며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원래 오리지널이란 것은 없다. 한국은 수천년 역사상 외세 침입을 많이 받았고 근세에는 일본 식민지하에 있어 한이 많은 민족이다. 어느 나라나 영향을 주고받고, 각 나라마다 서로 돌고 돌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오랫동안 발효가 되면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라
현재 이우환은 지난 10년간 한국내 경매시장에서 작품 거래액이 가장 많았던 작가로 그의 회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는 수억 원대에 달한다.
어려서 한학을 가르쳐 준 동초 선생의 ‘삼라만상은 점에서 시작됐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은 이우환은 70년대초에 점 시리즈를 시작, 흐트러짐 없는 점의 화면구성에서 여백을 보고 90년대 이후 화면이 다듬어지면서 점 개수가 작아지며 더욱 생동감을 얻었다. 그가 점 하나를 찍어도 예사롭지 않은 것은 작가의 깊은 통찰과 사색 끝에 나온 ‘화룡점정’(畵龍點睛)을 떠올리면 될 듯싶다. 점 하나가 단번에 숨결을, 영혼을 불어넣어 주변에 큰 시간과 공간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우환은 그동안 대여섯번 뉴욕에 온 적은 있으나 아직 뉴욕에 대한 인상이나 뉴욕 스튜디오 등은 전혀 머릿속에 없다. “정신이 없어서 지금 딴 생각은 전혀 못해”그의 딸 셋 중 장녀는 가마쿠라 뮤지엄 큐레이터로 이우환 작품전 기획 및 전시 등 모든 일을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생존작가 회고전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열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아직 그는 젊다. 분홍색 셔츠와 청재킷, 청바지 차림의 그는 몰려든 관객으로 인해 홍조를 띤 얼굴이 만년청년 모습이다.
“아무쪼록 예술작품을 까다롭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 감각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라. 조금이라도 더 전람회나 음악회를 보러 가라. 예술이란 것이 빵이나 무기와 달리 자기를 신선하게 한다는 느낌만으로 좋다. ”작가의 말처럼 이곳에 가면 정신적 오아시스를, 이민의 삶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사유하게 된다.
또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한민족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