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서울 여동생에게서 이메일울 받고 얼떨떨했다. “엄마가 작은오빠 칠순 축하한다고 전하래요…”라는 내용이었다. 당장 답장을 보냈다. “무슨 서운한 말씀? 나이 먹는 게 뭐가 좋다고 앞당겨 축하 하신다냐?”고 핀잔했다. 곧바로 또 메일이 왔다. “미국서 오래 살더니 생일 쇠는 법도 잊었는가보네? 칠순은 한국나이로 쇠는 거요”라고 비아냥거렸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동생 말이 맞다. 환갑(60세)과 진갑(61세)만 꽉 찬 나이(미국나이)로 쇠고 그 외의 모든 생일은 한국나이로 따진다. 그러니까 환갑잔치는 한국나이 61세, 진갑잔치는 62세에 치르지만 칠순(70세), 희수(喜壽, 77세), 산수(傘壽, 80세), 미수(米壽, 88세). 졸수(卒壽, 90세), 백수(白壽, 99세)는 모두 한 해 앞당겨 한국나이로 쇤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국나이냐, 미국나이냐는 대수롭지 않다. 중요한 건 이제 내가 좋든 싫든 사람들로부터 고희(古稀)의 노인으로 공식 인정받게 됐다는 사실이다. 서글프고 충격적이다. 공교롭게도 칠순 되기 엿새 전에 손자가 태어났다. 첫 손자지만 이미 5년 전에 첫 손녀를 봤다. 칠순 나이는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두 손주의 할아버지임을 감출 수는 없다.
고희는 70년을 사는 사람이 자고로 드물다는 뜻이다. 두보의 ‘곡강이수’ 시집에 나오는 ‘인생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환갑은 청춘, 인생은 70부터”라고 말하지만 그 말에 위안 받기보다는 한국남자의 예상수명이 76.5세라는 한국 통계청 공식통계에 더 기가 죽는다. ‘본전인생’까지 6년 반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환갑도 못 넘겼지만 1,000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황금을 돌같이 쓰며 40년간 왕좌를 지켜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영화를 누렸다는 지혜의 왕 솔로몬도 말년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한탄했다. 온갖 것을 가져보고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어도 영원히 내 것이 되지 못하고 죽으면 끝장이기 때문에 허전하다는 독백이다.
단 한명의 아내를 두고 돌이 황금으로 변해주길 바라며 바둥바둥 살아온 나에겐 모든 것이 더 헛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살다 보니까 70이 돼버렸다.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지만 남겨놓을 것도 없다. 내 딴엔 한 우물을 판다며 거의 반세기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사실은 내 멋대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인생교훈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칠순축하 소연을 마련해준 친구가 “살만큼 산 것 같은데 얼마나 더 살거냐”고 짓궂게 물었다. 이제까지처럼 살 때까지 살겠다고 막연히 대답했다. 그러나 속셈은 다르다. 사람의 나이는 환갑을 기준으로 새로 시작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고작 충년(沖年, 10살)이다. 이제까지처럼 산다면 140살까지 산다는 얘기다. 턱없지만 욕심은 원래 공짜다.
공자는 사람이 고희가 되면 ‘욕심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慾不踰矩)’고 했다. 하지만 노인 욕심은 젊은 사람 욕심보다 추해 보인다. 노욕(老欲)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노욕의 화신 같은 노인들을 한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자질구레한 감투자리를 놓고 노욕이 발현되기 일쑤여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고희의 노인들이 가져야할 욕심은 따로 있다. 건강욕심이다. 팔순을 넘겨 살며 말년까지 연애를 즐긴 문호 괴테는 노인의 삶을 상실의 삶으로 규정하고 남은 건강이라도 더 잃기 전에 알뜰히 챙기라고 일렀다.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만사가 의미 없다고 했다. 그는 건강과 함께 돈, 일, 친구, 꿈 등 모두 다섯 가지를 잃지 않도록 힘쓰라고 노인들에게 권고했다.
매주 토요 정기등반 모임에 꼬박꼬박 동참하는 어르신이 있다. 고희가 아니라 미수(88세)를 바라보는 그분은 괴테가 권고한 다섯 가지를 거의 다 실천하고 있다. 학식이 높지만 노욕이 없다. 나와는 달리 식탐도 없어서 그 나이에 소위 ‘몸짱’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주중에도 자주 산에 오른다. 칠순이 지나면서 그 분처럼 늙고 싶다는 노욕이 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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