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필요는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찾아내는 것”
오케스트라의 목관악기 가운데 ‘바순’이라는 게 있다. 3m 정도 되는 길쭉한 원뿔 모양의 바순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낮은 음을 내며 다른 악기들과 쉽게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쉽게 배울 수는 없는 악기로 꼽힌다. 어른도 다루기 까다롭다는 바순을 1950년대 후반 10살짜리 꼬마였던 제임스 다이슨이 배우겠다고 덜컥 나섰다. 누가 봐도 분에 넘치는 도전이었을 텐데, 겁 없는 소년은 당차게 매달렸다. 다이슨의 자서전에 담겨 있는 표현을 빌면 “버거운 일에 도전해 녹초가 될 때까지 매달리는 근성”으로 그는 바순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갔다.
■‘당연한 불편’은 없다
샤워하고 나서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동안엔 대화가 실종된다.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바로 옆 사람 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연한 불편이라는 생각에 누구도 그 불편을 해소하려 하지 않았다. 다이슨이 지난해 내놓은 헤어드라이어 ‘수퍼소닉’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의 소리만 낸다. 나머지 소리는 인간의 청력으로 들을 수 없는 고주파 영역으로 처리됐다.

영국 전자제품 기업 다이슨의 최고기술자 제임스 다이슨이 자사의 헤어 드라이어 ‘수퍼소닉’을 들고 있다. 가운데 뚫린 부분에서 바람이 나오며 스스로 온도를 조절한다. 다이슨 제공
기존 헤어드라이어를 쓰면 열 때문에 모발이 상하기 일쑤다. 반면 수퍼소닉은 공기 온도를 매초 20번씩 측정해 스스로 온도를 조절한다. 또 기존 헤어드라이어는 바람이 나오는 부위에 모터가 들어 있어 윗부분이 무겁지만 수퍼소닉은 반대다. 모터를 손잡이에 넣었다. 관습적인 설계를 확 바꿔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건조하는 데는 효율적이다. 더 빠르고 센 바람을 내기 때문이다. 소량의 공기를 빨아들여 이보다 16~18배 많은 주변 공기를 움직이는 ‘에어 멀티플라이어’ 기술과 기존 모터보다 더 작고 강력하면서도 자기장을 이용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모터를 자체 개발, 적용한 덕분이다. 이들 기술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날개 없는 선풍기와 먼지봉투 없는 무선 진공청소기에도 들어가 있다.
다이슨은 수퍼소닉을 만들기 위해 5,000만파운드(약 6,500만달러)를 들여 아예 모발연구소를 세웠다. 여기서 4년 동안 600개가 넘는 시제품이 나왔고, 이를 시험하려고 가발 만드는데 들어가는 인모(人毛)를 무려 1,625㎞나 썼다. 자체 모터 개발에는 16년 동안 엔지니어 100명이 달라붙었고, 2억5,000만파운드(약 3억2,000만달러)가 투입됐다.
■바다와 정원의 일대 변혁
다이슨이 바순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기 한 해 전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가 평생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다이슨은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 일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막내로 자라며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는데 익숙했기에 다이슨은 진로도 누구의 도움 없이 결정했다. 화가가 되고자 예술학교로 진학했고, 인테리어 디자인과 구조공학에 매료됐다. 그리고 최초의 대서양 횡단 증기선을 설계한 영국 공학자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처럼 세상에 없던 뭔가를 내놓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다이슨의 첫 번째 발명작은 1969년 ‘시트럭’이었다. 가볍고 빠르면서도 차량 같은 무거운 화물을 싣고 바다 위를 달릴 수 있는 배다. 시트럭을 세계 곳곳에 팔며 다이슨은 혹독한 ‘영업 훈련’을 했다. 다음엔 정원용 손수레를 만들었다. 폭이 좁은 바퀴로 움직이는 기존 수레가 균형이 잘 잡히지 않고 바닥에 흉한 바퀴 자국을 남기는데도 소비자들은 불편을 감수한 채 늘 같은 손수레를 써왔다. 다이슨은 수레에 바퀴 대신 엉뚱하게도 커다란 공 모양 플라스틱 튜브를 달아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볼배로’란 이름의 이 수레는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지만 ‘짝퉁’ 제품 등장으로 소송에 휘말렸고, 다이슨은 자신이 설립한 볼배로 회사에서마저 쫓겨나야 했다.
■英 왕궁에 놓인 청소기
볼배로 회사를 나온 1979년 다이슨은 진공청소기 개발사를 차렸다. 사무실이자 연구실은 집 옆 마구간이었다. 먼지봉투에 먼지가 쌓이면서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기존 진공청소기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이슨은 먼지봉투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 “내일은 될 거야”를 수없이 되뇌며 5년을 보낸 끝에 ‘사이클론’ 방식을 적용한 청소기를 만들었다. 원뿔 모양의 통이 빠르게 회전하는 동안 먼지 입자가 중력보다 큰 힘을 받으며 벽면을 따라 끌려 내려와 먼지통에 모이는 원리다. 먼지통도 전과 달리 투명하게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먼지가 제거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유명 가전업체들은 변화를 외면했다. 먼지봉투 판매가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테니 혁신이 달가웠을 리 없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먼지봉투와 불투명한 먼지통에 익숙하기 때문에 다이슨의 청소기가 팔리지 못할 거라고 단정했다. 판로가 막히고 재정 상황도 나빠지면서 다이슨은 좌절했다. 자신의 제품을 베낀 청소기를 내놓은 거대 다국적기업과 소송전도 벌여야 했다. 온갖 난관 끝에 드디어 1985년 일본, 1990년 미국 시장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내놓았다. 소비자들은 다이슨의 새로운 청소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의 청소기는 마침내 영국으로 진출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궁전에도 놓였다. 다이슨의 목엔 대영제국훈장이 걸렸다.
■투자=실패할 수 있는 여지
올해 일흔이 된 다이슨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한다. 직함은 최고기술자(Chief Engineer). 자신의 회사지만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그는 지금도 연구실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다이슨의 60번째 생일에 다이슨의 엔지니어들은 기술과 디자인이 성공적으로 결합했다고 평가받는 1961년형 오스틴미니 자동차를 ‘반으로 잘라’ 가져왔다. 제품의 구조와 원리에 목메는 다이슨을 위한 기상천외한 선물이었다.

날개 없는 선풍기에 살균된 수증기를 내보내는 기능을 추가한 다이슨의 가습기. 다이슨 제공
시트럭부터 슈퍼소닉까지, 소비자를 대하는 다이슨의 철학은 명확하다. 소비자의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만든다는 얘기다. 다이슨이 회사를 상장하지 않는 것도 공시기업이 되면 소비자가 아닌 주주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제품 출시를 서두르거나 기업 운영을 수동적으로 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상을 바꿀 소프트웨어를 손에 넣기 위해 다이슨은 매주 700만파운드(약 900만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이 어마어마한 금액은 직원들에게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발명할 때 실패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일 뿐이며,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뤄진다”는 다이슨의 신념이 다이슨에 거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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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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