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무역대표 “WTO 최대 수혜는 중”
▶ 글로벌 무역질서 미 주도 ‘새판’ 의지
▶ 다자주의서 양자주의 체제로 재편
미국의 대외 무역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30년간 전 세계 다자간 자유무역질서를 이끌어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료를 선언하며, 글로벌 무역질서를 '트럼프 라운드'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패권경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WTO 울타리 안에서 혜택을 누린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미국 주도의 새판을 짜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으로 읽힌다.
그리어 대표는 7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166개 회원국의 무역정책을 규율하도록 설계된 WTO 주도의 세계 질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미국은 산업 일자리와 경제적 안정을 잃으며 WTO 체제의 대가를 치렀고 가장 큰 수혜자는 국유기업과 5개년 계획을 운영하는 중국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산업 역량과 고용은 크게 손상되며 핵심 공급망을 적성국에 의존하게 됐다"며 과거 무역체제가 미국에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브레튼우즈 체제(1944년)부터 케네디 라운드(1964년), 도쿄 라운드(1973년), 우루과이 라운드(1986년), WTO 설립(1995년) 등 세계 무역체제의 변천사를 차례로 언급한 그는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이후 상호관세 부과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과 체결한 무역협정을 과거 다자주의 무역협상들에 빗대 트럼프 라운드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기존 체제의 역사적 맥락을 차용해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알리며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라운드를 대표하는 사례로 지난달 27일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발표한 무역합의를 꼽았다. 그는 "공정하고 균형 있으며 다자 기구의 모호한 염원이 아닌 구체적인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의 역사적 합의"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은 관세 부과와 함께 새로운 국제 체제의 토대가 될 개혁을 이끌어, 오랫동안 풀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그리어 대표는 국제 무역질서에서 트럼프 라운드가 WTO를 대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WTO 체재로 인한 중국의 비대칭 성장 등 무역 불균형과 관련해 “미국은 최근 단 몇 개월 만에 지난 30년간 WTO가 하지 못했던 외국 시장 접근 확대를 실현해냈다”며 “한국은 15% 상호관세와 함께 미국의 자동차 기준을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특히 무역 분쟁의 중재자도 WTO가 아닌 미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무역 관료들이 선호하는 (WTO의) 지루한 분쟁해결 절차 대신, 미국이 택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무역합의 이행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불이행 시 더 높은 관세율을 신속하게 재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WTO는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대체해 1995년 공식 출범한 기구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부터 WTO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에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 기업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거래를 방치한다며 불신을 표출했고, 이에 WTO 분쟁해결기구(DSB)의 상소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WTO 체제를 무력화시켰다.
트럼프 라운드에선 세계무역체계의 중심이 다자주의(WTO)에서 양자주의로 이동하며, 관세 부과 같은 힘 있는 국가의 이해만이 우선시될 거라는 우려를 낳는다. 실제 2019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던 당시 양국은 서로 WTO에 제소했지만, 이미 유명무실해진 WTO 상소기구에서 판정을 받지 않고 미중이 직접 해결에 나서면서 국제 무역질서에서 양자주의 구도를 강화시켰다.
세계 무역질서가 트럼프 라운드로 재편되면 단시간에 다자무역 구도로 회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정책 연구기관 애틀랜틱 카운슬 소속 조시 립스키는 지난 1일 “(트럼프 행정부가) 70년 이상 걸려 구축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단 7개월 만에 재구축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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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박지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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