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문화유산인 브뤼겐 역사지구.
덴마크 코펜하겐을 출발, 베르겐까지 비행은 짧았지만 시간은 거꾸로 흐른듯 했다. 바다를 중심으로 삶을 꾸려온 이 항구 도시는 마치 중세 북유럽의 실루엣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쪽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웅장한 피오르드(Fjord) 지형과 눈 덮인 산맥, 그리고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수도는 오슬로(Oslo),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북대서양과 접해 있어 해양국가로서의 성격도 강하다. 노르웨이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로, 교육과 의료는 대부분 무상이고, 복지 수준도 매우 높다.
베르겐 도착 후 제일 먼저 솔베이지 송의 작곡가이며 노르웨이 민속 음악가 에드워드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의 생가 트롤 하우겐(Troldhaugen)을 방문하여, 그의 작곡실과 호젓한 피요르드를 바라보고 있는 그리그 부부의 돌무덤을 돌아보았다.
자연에 둘러싸인 고요한 숲속, 노르웨이 베르겐 근교의 트롤하우겐 (Troldhaugen)에 자리한 그리그 생가는 마치 한 편의 서정시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그는 자신의 서재 책상에 앉아, 바로 펼쳐지는 피요르드의 잔잔한 물결과 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며 작곡에 몰입했을 것이다. 자연의 숨결이 음악이 되고,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선율은 그리그의 대표작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노르웨이의 영혼을 담은 작곡가’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품 안에서 음악과 삶을 하나로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헨리크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Peer Gynt)에 곡을 붙인 관현악 모음곡이 있다. 이 작품은 특히 아침의 기분(Morning Mood)과 솔베이의 노래(Solveig’s Song) 같은 귀에 익숙한 곡들로 잘 알려져 있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최초의 페미니즘 문학 작품으로도 유명하며, 그리그와 입센은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또한,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은 그리그의 대표적인 협주곡으로, 북유럽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피아노 서정 소곡집으로 총 66곡, 10개의 소품집으로 구성된 피아노 독주곡 중 나비(Butterfly), 작은 노래(Little Song), 왈츠(Waltz)등이 인기 있으며, 슈만과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듯한 성악곡과 가곡도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실내악으로 노르웨이 민속 음악 요소가 담긴 밝고 생동감 있는 바이올린 소나타도 여러 곡 남겼다.
베르겐(Bergen)은 물 위에 뜬 과거이자, 무역으로 성장한 자존심의 도시다.
그리그 생가를 둘러본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중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시대 무역 중심지였던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항구 브뤼겐(Bryggen)으로 가기 위해 버스로 30여 분 이동했다. 도시의 핵심인 브뤼겐(Bryggen) 거리에서, 우리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목조 건물은 삐뚤빼뚤하고, 외벽은 비바람에 조금씩 깎여 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놀라운 건 그 건물들 안에 지금도 작은 상점들과 갤러리, 공방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한자동맹(Hanseatic League’s trading empire)의 중심지였다. 한자동맹은 독일 북부와 북해, 발트해 연안 국가인 노르웨이(베르겐), 스웨덴, 덴마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폴란드의 독점적 무역 권리 확보를 위해 만든 중세 유럽의 상인 네트워크로, 상품과 문화뿐 아니라 언어와 제도까지 유럽 전역을 연결했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존속했으며, 절정기는 14~15세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브뤼겐은 단순한 무역 기지가 아니라, 북유럽 공동체 문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생선시장(Fish Market) 근처를 지나며, 생선을 고르는 현지인들과 여유롭게 장을 보는 관광객들이 뒤섞이는 풍경이 인상 깊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곳에서 먹은 와플 아이스크림이다.
이곳에선 경쟁보다 공존의 리듬이 흐른다. 여행자로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항구 근처 벤치에 앉아 낡은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바다를 바라볼 때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노르웨이 출신 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Næss)였다. “인간은 자연 속의 한 구성원일 뿐이며,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그는 심층 생태학을 주장하며, 모든 생명체는 자기 고유의 가치를 가지며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바다도, 건물도, 사람도, 시간도… 이 도시에서는 어느 것도 중심이 아니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동등하게 존재하는 듯싶다.
한자동맹 시대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세계문화유산 거리에서, 중세 상인들이 귀하게 여긴 이 지역의 대표 수산물인 대구를 기대했으나, 대구 대신 현재 이 지역 특산물인 광어의 일종인 할리벗(Halibut)으로 요리한 Grilled Halibut with asparagus, mushroom and butter sauce 정찬을 즐긴 후 오늘 베르겐의 꿈같은 하루가 마감되었다.
<글·사진 임광숙 작가(여행 인문학 작가·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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