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격침 사건을 전쟁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ICC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ICC) 검찰국은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주장하는 통신들을 받았다.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검사는 이들 사건이 ICC 관할권에 해당되는 전쟁범죄인가의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검찰국이 예비조사에 착수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ICC는 예비조사 대상으로 밝힌 ‘이들 사건’을 구체적으로 “▲남한 해병들과 민간인들이 살해되고 그 이외 여럿이 부상을 당한 결과를 낳은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과 ▲북한 잠수정으로부터 발사된 것으로 주장된 어뢰에 맞아 46명이 사망한 결과를 낳은 남한 전투함 천안 격침”이라고 적시했다.ICC는 이어 “대한민국은 2002년 11월13일 (재판소 설치 근거가 되는) ‘로마 조약’을 비준한 국가이다. 따라서 ICC는 대한민국에 조약 효력이 발휘한 2003년 2월1일 후 대한민국 영토에서 발생했을 수 있거나 또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자행했을 수 있는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또는 대량학살에 대해 관할권이 있다”고 설명했다.
ICC는 또 “(로마) 조약은 검찰국에게 (특정 사건이) 로마 조약에 따라 조사가 가능한가를 판결하기 위한 예비조사를 실시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고 덧붙였다.따라서 ICC 검찰국은 이번 예비조사에서 연평도 또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전쟁범죄 조사가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릴 경우 본격 조사를 실시할 수 있게 되며 본격 조사 결과에 따라 이들 사건의 실제 책임자, 또는 책임자들은 검찰국에 의해 ICC에 전쟁범죄 혐의자로 기소돼 재판에 부쳐질 수 있어 주목된다.
한편 ICC 소장은 지난해 3월 동료 재판관들의 호선에 의해 선출된 송상현(전 서울대 법대교수) 재판관이 맡고 있다.
<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북도 김책 제철연합기업체를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7일 이 사진을 보도하며 정확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사진=연합)
■북한의 대한민국 도발 행위
1950년 6월25일 새벽, 대규모 포사격을 시작으로 북한은 기습 남침해 6.25 전쟁을 일으켰다.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 사령관 간에 휴전이 조인돼 정전된 이 전쟁은 한국 국민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는 김일성 공산주의 세력의 공세로부터 자유를 지킨 전쟁이었다.
한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쟁 결과 남한 측 군인의 사망, 부상, 행방불명 피해자는 98만 7,000명, 유엔군 피해자는 15만 1,500명이었다. 민간인 피해자는 사망, 부상, 행방불명을 포함해 총 80만 4,600명에 달했다.북한군은 전쟁 당시 남한 점령지에서 인민재판을 통해 지주와 공무원을 인민의 적으로 몰아 살해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면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했다. 그 외에도 북한군이 전쟁기간에 북한으로 납치한 한국 국민만도 8만명이 넘는다.
6.25전쟁 후 대한민국을 향한 북한의 도발은 1950년대 말 대한항공기 납치 사건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최근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국가원수 암살기도를 비롯해 무장공비 침투 등 지상, 해상, 공중, 해외에서 모두 470여건에 걸쳐 3,738명에 이르는 주요 인사와 민간인 납치, 그리고 국가주요시설 파괴 등 다양한 형태의 만행을 자행해오고 있으며 ‘국제형사재판소’는 한국이 ‘로마 조약’을 비준, 효력이 발휘된 2003년 2월1일 이후 감행된 ‘연평도’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전쟁범죄 처벌 관할권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7일 오전 한국 해병대 대원들이 해안을 순찰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암살.테러 사건들
▲국가원수 암살 기도
1·21 청와대 기습(1968년 1월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비밀 침투했다. 이들은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들어왔다가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나자 수류탄과 기관총을 난사했다. 무장공비 31명중 28명은 사살됐고, 2명은 도주했으며 김신조는 생포됐다. 이 사건으로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순직하는 등 다수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 미수(1970년 6월22일). 한국전쟁 20돌을 앞둔 1970년 6월22일 새벽 서울 국립 현충원에 북한 공작원이 잠입해 폭약을 장치했다. 그러나 폭약 설치중 폭약이 폭발해 미수에 그쳤으며 현장에서 간첩 1명이 즉사하고 1명이 붙잡혔다.
▲광복절 대통령 저격 사건(1974년 8월15일).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장에서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저격 미수 사건은 북한의 대표적인 저격 사건이었다. 경축식장 1층 뒤쪽의 해외 동포석에 자리잡고 있던 저격범인 북한의 문세광은 연설중이던 박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는데 3탄이 단상에 앉아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맞았다. 박 대통령은 저격범이 체포된 뒤에도 계속 경축사를 낭독했으며 경축식은 예정대로 끝났다. 그러나 총격을 받은 육 여사는 49세로 운명했다. 문세광은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돼 1974년 12월21일 교수형이 집행됐다.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1983년 10월9일). 아웅산 국립묘지 암살 만행은 북한이 1983년 10월9일 미얀마를 친선 방문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의 아웅산 국립묘소 참배를 이용, 암살하기 위해 사전에 이 묘서 건물 천장에 설치한 원격조종폭탄을 폭발시켜 한국의 부총리와 장관 등 수행원 17명을 순국케 하고 14명을 부상시키는 테러를 감행했다. 미얀마 당국의 수사결과 사건은 북한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항공기 테러
KAL YS-11기 납치(1969년 12월11일).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행하던 대한항공의 KAL YS-11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승객으로 위장해 타고 있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됐다. 이후 39명은 한국으로 귀환했으나 12명은 아직도 한국으로 보내지지 않고 있다.
▲KAL 858기 폭파 테러(1987년 11월28일). 1987년 11월28일 밤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기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사전 장치한 폭탄에 의해 공중 폭파된 사건이었다. 이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자 등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감행했다.<자료: 6.25 이후의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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