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캠프 도착하니 등정대 텐트 200여개 장사진
전세계 500명과 ‘선의의 경쟁’
3월30일 에베레스트의 도시,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이번이 세 번째.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의 긴장감보다 순박한 네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편안함이 찾아온다. 냉면서부터 굴비까지 듬뿍 싸들고 온 한국음식 재료를 생각하면 등반의 걸림돌은 없을 것만 같다.
카트만두에서 에베레스트 출정준비를 마친 후 4월2일 루클라(해발 2,830m)에 도착했다. 실질적인 등반의 출발점인 이 곳서부터 앞으로 9일 동안 베이스캠프까지 훈련을 겸한 이동을 하게 된다. 다음 행선지인 파크딩을 향해 짐을 꾸리니 조금씩 설렌다.
에베레스트 등정대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라마제가 전세계 등정대가 참여한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남체를 거쳐 4일 ‘세계의 정상’이란 쿨룸(해발 3,897m)에 당도했다. 마을에 붙은 별명이 허언이 아니라는 듯 함께 온 원정대원 일부가 벌써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이들의 고소증세가 옅어졌지만 ‘이제부터 싸움이 시작됐구나’란 생각이 마음을 굳게 만든다.
얼마나 걸었을까. 5일 딩보체에 도착하니 아름답고 웅장한 에베레스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함께 한 9명의 재미한인산악회 대원들의 입에서 “아∼”하는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원들의 입에서 그동안 숨죽였던 피로를 비웃듯 웅성거림에 연신 이어지고 있다. 에베레스트의 힘이었을까? 쿨룸보다 고도가 높은 이 곳에서 고소증세를 호소하는 이가 없다. “이번 등반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말이 대원들 사이에서 절로 나온다.
이곳에 도착하니 또 다른 등반팀에 군데군데 눈에 띈다. 산으로 묶인 우리는 생면부지지만 반가운 인사와 함께 등반정보도 교환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모처럼 밀린 빨래도 해결해 한결 상쾌한 느낌이다.
9일 칼라파타르에 도착했다. 매서운 눈매를 지닌 단신의 남성이 다가왔다.
“반갑소. 내가 당신들을 인도할 아파요.” 몇 차례 전화만 나눴던 세계적인 셀파인 아파는 예상보다 키가 작고 호리호리했지만 다부진 상체는 그가 왜 에베레스트를 15번이나 등정할 수 있었는지 입증해 보였다. ‘목숨을 의지할 만한 친구구나’라고 생각하며 그와 기쁘게 인사를 나눴다. 한편, 이날 산악 선배인 연응모(65) 대원이 고소증세를 호소하며, 등정대에서 이탈했다. 에베레스트의 설렘도 잠깐, 두려움도 함께 밀려온다.
보행으로 루클라를 출발한 지 216시간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눈앞에는 에베레스트를 집어삼키려는 200여개의 에베레스트 등정대 텐트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500여명이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등정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를 응원하기 위해 이 곳까지 함께 온 재미산악회 대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건네야 했다. 이제부터 산과 나와의 싸움뿐이다.
14일 에베레스트 원정 산악인들의 평안한 등정을 기원하는 라마제가 시작됐다. 북소리에 실려보낸 ‘무사히 등정을 마치게 해주십시오’란 마음 속 외침이 에베레스트를 감동시키기를 바랄 뿐이다.
낮에는 최고온도가 30도, 밤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이곳에서 쉴 틈이 없다. 돌멩이를 벗삼아 근육운동을 하는 등 정신이 없다. 하늘에서 눈이 쏟아진 18일 모두가 기상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하필, 올해가 등반대원 전원이 몰살당한 1996년 대참사 10주년이라니… 불길한 악몽이 재현될까봐 눈 내리는 이 곳은 고요한 침묵만이 흐른다.
21일 오전 7시. 옆 텐트의 아파가 평소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를 연신 쏟아낸다. 화들짝 놀라 텐트 바깥으로 나갔다. “명준, 큰일났어. 우리 셀파에게 사고가 났어” 아, 무슨 날벼락이람…
<정리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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