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의정 관장의 민경호 UC버클리 명예교수의 삶*태권도의 세계화

미국체육회의 회장인 데이빗 리븐스씨와 경기 종목 담당관인 짐 스티븐스씨와 함께 1974년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태권도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왼쪽부터 민교수, 리븐스씨, 김종필 국무총리, 스티븐스씨, 김운용 총재.
연재 목차
1. 한국전쟁과 어린 시절
2. 미국 유학과 버클리 대학에 체육 교수 채용
3. 태권도 세계화의 불씨
4. 미국의 대학에서 세계로
5. 태권도의 올림픽 입성을 위한 민교수의 노력
6. 버클리 대학의 태권도 교육이 영구 보존되다.
7. 민경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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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민경호 명예교수 UC 버클리 시절 내용중 최의정 관장의 민교수 인터뷰 내용은 UC 버클리 무도 연구소에서 나온 베라 챈(Vera Chan)이 편집한 "Working the Way"라는 책의 내용과 공유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최의정 관장이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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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세계화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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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태권도 연맹의 총재였던 최홍희 총재가 캐나다로 망명을 떠나자 한국에는 태권도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종우 지도관 관장과 엄운규 청도관 관장을 중심으로 그 당시 박정희 정권과 가까웠던 김운용 회장을 1971년에 대한 태권도 협회의 회장으로 영입하게 된다. 그는 1972년에 국기원을 짓고 1973년에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그것도 새로 지은 국기원에서 개최하게 된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세계 태권도 연맹 (World Taekwondo Federation, 나중에 WT로 이름이 바뀜)을 만든다. 제1회 태권도 세계 선수권 대회는 5 월 25 일부터 27일까지 열렸고 17 개국에서 161명의 선수들이 참가 했었다.

1973년 한국 국기원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참석한 미국 선수들과 임원진이 주한 미국대사관을 방문한 모습.
미국팀은 선발전을 거쳐서 동부, 중부, 서부의 세 팀으로 참가하게 된다. 동부팀은 잭황 관장이 단장으로, 민교수가 동서부 양팀의 총괄 총무로, 전인문(Richard Chun) 관장이 고문으로 그리고 김일회 관장이 코치로 참석한다. 중부팀은 에드워드 셀이 단장으로, 몬트 벡쏠이 감독으로 형숙 셀이 코치로 참석하게 된다. 서부팀은 새크라멘토의 고 강명규 관장이 주축이 되어서 감독으로 김대현 관장이 코치로 참석한다.
1973년 세계대회에 참석하기 훨씬 전부터 민교수는 태권도를 공식적인 위치에 올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UC 버클리에 취임하고 나서 바로 1970년에 그는 미국 대학 태권도 협회를 창설한다. 당시에는 UC 버클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UC 8개 캠퍼스에는 태권도 과목이 없었다. 따라서 대학 시합에서는 가라테의 규칙에 따라 가라테 시합에 참석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라테는 상대를 가격하지 않고 상대의 몸에서 1인치 정도 떨어진 곳에 손이나 발 공격을 멈추는 규칙을 사용한다. 하지만 실수로 얼굴 공격을 하는 반칙행위가 자주 발생하곤 했다. 어이없이 부상을 당한 제자들을 보고 분통이 터진 민교수는 태권도 규정에 따라서 시합을 하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후로 2년동안 캘리포니아 협회를 만들려고 그는 주말마다 로스앤젤레스로 프레즈노로 여행을 하면서 노력하였지만, 남가주 태권도 사범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사이에 1972년에 가라테는 UCLA의 니쉬야마 선생의 주도하에 AAU의 공인 스포츠로 등록되어 인정을 받게 된다. 이것은 곧 UC 9개 캠퍼스의 가라테와 코리안 가라테 시합이 가라테 규칙에 따라서 시합을 운영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 대학 체육 연맹 (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es Association)이 선수들의 훈련을 담당했지만, AAU는 미국의 모든 스포츠를 통제하고 있었으며, 올림픽 선수 선발도 관할하고 있었다.
그의 가라테와 태권도의 차이점에 대한 광범위한 홍보와 노력 끝에 AAU회장인 데이빗 리빈스 회장으로부터 몬태나의 웨스트 엘로우 스토운에서 1973년 10월 8일에서 13일까지 열린 집행위원회 모임(Executive Committee Meeting)에 참가하도록 초대를 받는다. 그는 금요일, 10월 12일 2시에 수업을 마치고 출발하여 캘리포니아에서 몬태나까지 밤새 운전을 하였다. 토요일 13일에 열리는 회의에 가까스로 참석했다. 이 거리를 오늘날 운전 한다면 이틀이 걸리는 거리이다. 그가 얼마나 이 일에 매달렸는지를 알 수 있다.
이 회의에서 그는 준비한 자료에 근거하여 발표를 한다. 그는 미국의 대학에서 여러 종류의 무도가 어떻게 수련되고 있는가 하는 설문조사를 하였다. 조사결과 코리안 가라테(태권도)의 수련생이 일본, 중국 무술 수련생보다 더 많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마침 세계적인 권위를 가졌던 블랙 벨트 메거진(Black Belt Magazine)의 1973년 연감도 그의 설문조사 결과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태권도의 또 다른 독립 이유는 경기 규정이 달라 큰 부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과 주관하는 단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집행위원회는1974 년 5월에 있을 다음 집행위원회 회의에 상정하기로 그의 안건을 승인하게 된다.
1973년 제1회 세계대회에 미국 팀의 사무총장으로 다녀오게 된 민교수는 미국 체육회 임원들을 한국에 데려가 태권도를 소개하고 그 위상을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시차도 생각하지 않고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김운용총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는 AAU에 태권도를 독립단체로 등록하려고 하는 계획을 설명하고 물밑작업으로 미국체육회의 회장인 데이빗 리븐스(David Rivenes)씨와 경기 종목 담당관인 짐 스티븐스(Jim Stevens)씨와 함께 1974년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한국을 방문하여 태권도에 대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초청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김총재의 순발력 있는 조처로 그들의 한국 방문이 이루어진다. 미국체육회 임원들은 김택수 체육회장, 김종필 국무총리, 장기영 국제 올림픽 위원 등을 만나고 미동국민학교 어린이들의 태권도 시범등을 통해서 태권도에 관하여 소개를 받게 된다. 또한 스포츠 과학 연구소의 이근세 서울대 교수를 만나게 된다. 민교수는 특히 이근세 교수에게 미국의 체육 시스템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체육회는 미국 체육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코치 초빙, 선수 방문 등을 통해서 양국의 스포츠 교류가 활발해지게 된 것이다.
미국 체육회 임원들의 한국 방문후에 치러진 1974년 5월 집행위원회에서는 안건이 쉽게 통과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10월 13일부터 19일까지 워싱턴 DC의 쇼어햄 아메리카나 호텔에서 열릴 전국 대의원 회의에서의 표결이었다. 이주일동안 열리는 회의 중 금요일 총회에서 표결된 이 안건은 가라테 위원회의 공격적인 홍보로 기각되고 만다. 하지만 리빈스 회장은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크게 실망을 하고 있던 민교수를 따로 불러서 마지막 날에 다시 한번 안건을 상정할 것이니 유도와 레슬링 회원들을 설득해 보라고 충고를 한다. 마침 일본계 가라테 관장들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면서 미리 집으로 돌아갔고, 한국 태권도 관장들도 졌으니까 골프나 치러 간다고 나갔다고 한다. 유도 위원회 회장인 김위생씨, 예일 대학의 황인수씨, 농구 위원회 회장인 프랭크 스페찰스키(Frank Spechalske)씨, 레슬링 위원회 회원 등이 밤새 태권도를 다시 회원들에게 소개시키는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마지막날 투표에서 814대 149표로 민교수의 안건이 받아들여졌다. 태권도가 가라테에서 독립된 단체로 미국 체육회에 등록이 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태권도가 앞으로 올림픽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게 되는 모든 활동의 첫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태권도가 세계 최고의 국가에서 공식 종목으로 인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이듬해에 가이프(GAISF)와 팬암(PANAM)에 정식 종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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