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한 해를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고맙게 해 준 사람들과 그들이 해 준 일을 기억하면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힌 사람들과 그 어려웠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억의 차이가 사람의 삶을 바꿉니다.
자기를 괴롭힌 사람들과 어려웠던 일만 기억하는 사람은 세 가지 비읍으로 인생을 정리합니다. “비교” “불평” “비난”이 그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기 배우자를 “비교”하고 자기 자녀를 “비교”하고 자기 부모를 “비교”하고 자기 목회자를 “비교”하고 자기 성도를 “비교”하고 그러다가 “불평”하고 그러다가 “비난”하고 그렇게 “불행”하게 삽니다. 비읍에서 시작해서 비읍으로 끝이 납니다. 내가 다른 부모를 만나고 다른 배우자를 만나고 내 자녀가 성공 출세만 했어도 내 인생은 더 잘 풀렸을텐데 이렇게 만든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외치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행패를 부립니다.
자기에게 고맙게 해 준 사람들과 그들이 베풀어 준 감사한 일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치읓으로 인생을 정리합니다. 어려운 고비마다 건져 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기를 도와준 이들을 “칭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보이는 이들을 야단치기 보다는 더 잘되라고 “축복”합니다. 이렇게 “찬양”과 “칭찬”과 “축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기역”에서 시작해서 “행복” 한 삶을 사는 “히읗”으로 끝이 납니다.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사랑의 표시를 하고 이웃과 작은 것도 나누면서 만족한 얼굴로 웃고 삽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정말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신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만 기억하고 사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정치를 하고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신본주의적인 신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악을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정치를 하거나 조종을 하지 않고 섬기고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을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은 악한 생각으로 나를 팔았으나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섭리 가운데서 역사하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를 훈련하고 생명을 살리신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본주의 신학의 고백입니다.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그리고 인생을 정리하면서 우리 모두가 이런 신본주의적인 신학으로 신앙을 재정립하고 세가지 비읍은 세 가지 치읓으로 바꾸어 기역에서 히읗까지 다 사용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콩코드 미 연합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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