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결속 주력..대미.대남정책 변화 없을 듯
후계문제 움직임 없어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와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8월 중순 이후 북한은 3개월 가까이 후계구도와 관련해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주민 결속 등 내부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정권 수립 60주년(9.9) 기념 노농적위대의 열병식에 불참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된 와병설을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과 대학생 축구경기 관람, 담화 발표, 선물 및 감사 전달 등을 일정한 기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외부에 소개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국정장악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하고 주민들에게는 김 위원장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일심단결을 촉구해왔다.
김 위원장의 ‘현재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축구경기 관람 사진을 2일 내외에 전격 공개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북한은 특히 국가안전보위부 등 공안기구를 통해 주민들 속에서 퍼지고 있는 건강 이상 소문을 차단하고 단속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적으론 남측 민간단체들이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다룬 전단을 북한에 살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군부가 나서 남북관계 전면차단을 경고할 정도로 남한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내부 결속을 위한 핵심도구는 김 위원장이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을 앞둔 9월 5일 노동신문과 민주조선에 보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불패의 위력을 지닌 주체의 사회주의 국가이다’라는 제목의 담화.
북한 언론매체들은 노동당 창당 63주년 당일인 지난달 10일 뒤늦게 이 `담화’를 소개한 이후 지난달 30일까지 무려 20일간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 보도했다.
종래 김 위원장의 담화나 `노작’ 그리고 김 위원장의 한해 정책과 노선을 담은 신년사라고 할 수 있는 신년 공동사설도 길어야 5-7일간 반복 보도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또 종래와 달리 이번 담화에 대한 `반향(반응)’에는 당.군.정 장관급을 비롯해 전부 국장급 이상 고위간부들이 등장해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고, 담화 실천을 독려하는 신문 사설들도 경제문제 는 두어 문장정도로 언급할 뿐 선군정치와 일심단결 및 사상무장 등 정치사상쪽에 초점을 맞췄다.
김 위원장에 대한 일심단결과 충성을 독려할 때는 그가 고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계승했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고, 혁명 1, 2세대의 혁명전통을 현재 북한의 주력세대인 3, 4세대가 존중하고 변함없이 계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엔 추수가 마무리될 무렵부터 ‘전국청년동맹 초급일꾼(간부) 열성자회의’와 ‘전국여맹모범초급단체위원장 회의’가 잇달아 열려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북한은 와병설 이전부터의 전략을 유지했다.
북미관계에서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에 불능화 중단 및 영변 핵시설 복구라는 ‘벼랑끝 전술’로 맞서 결국은 부시 행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남북관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 불이행을 비난하며 남북관계의 전면차단 결단 가능성과 우발적인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남 압박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남한에 대한 압박정책을 김정일 위원장의 공백기를 틈탄 북한 군부세력의 강경정책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김 위원장이 보여준 정책스타일로 미뤄 김 위원장의 동의없이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은 이번에 김 위원장의 ‘외출’을 공개함으로써 내부동요를 가라앉히는 가운데 눈앞에 다가온 미국 대선 이후 출범하는 새로운 미 행정부와 협상을 준비하면서 남한 정부에 대해선 현재와 같은 힘겨루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의 와병설 제기 이후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렸던 후계문제와 관련해선 두드러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정부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이 뇌관련 질환으로 쓰러진 초기 급박한 상황에서 국정운영을 대행한 것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라고 보고 있다.
장 부장은 이미 작년 10월 행정부장에 기용되면서 김정일 위원장 다음가는 2인자로서 위상을 완전히 회복했었다.
다른 고위간부들은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에 따른 위기의식 때문에 별다른 갈등없이 김 위원장을 사실상 대신할 수 있는 장 부장을 중심으로 뭉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면서 주요 현안을 관장하고 있지만 장 부장의 역할은 여전히 상당하다는 것이다.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의 후계문제와 관련된 움직임은 일절 없으며 이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에게 제언할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 부장을 비롯해 고위간부들은 김 위원장이 와병중인 현 상황에서 후계문제를 제기할 경우 김 위원장의 2선 후퇴를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감히 제기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한 전문가는 김정일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 현재의 상황은 권력엘리트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해야 할 극도로 예만한 시기라며 후계문제 제기는 김 위원장의 권력을 노리는 것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어서 누구도 제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본인도 원래 후계문제를 외면해온 데다 현재는 자신의 건강이상과 그에 대한 대내외의 여론에 더 관심을 쏟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의 이번 사진은 그의 ‘건재’를 확인한 만큼 그의 와병 사실도 입증하는 정보를 담고 있기때문에, 여전히 수면 아래 감춰진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내외의 관심은 계속 커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의 아들 중 한명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3대 세습, 아들이나 장성택 부장을 내세운 노동당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 등 다양한 관측이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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