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주 웨스트우드에 있는 패스캑밸리 병원은 백인지역에 있는 미국의 전형적 비영리 종합병원이다. 지난 1959년 지역 주민들이 설립한 이 병원은 300여개의 병상과 1,500여명의 의료진을 갖추고 연평균 1만8,000명의 입원 환자와 11만명의 외래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 병원에는 연 2,000명 정도의 한인환자들이 찾았는데 최근 몇년 사이에 연 2만명 선으로 10배가 늘었다. 지난 2003년 이 병원이 코리안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이다.
이 코리안 프로그램의 주역은 바로 이 병원의 최경희 부사장(53)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최 부사장이 코리안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가 코리안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여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부사장이 되었다. 최씨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 병원의 보드 멤버로서 무보수 자원봉사자였던 것이다.
각 과목과 전문센터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이 병원의 코리안 프로그램은 한 마디로 “100% 한인을 위한 종합병원”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 과에 걸쳐 한인 의사 30명, 한인 간호사와 직원 30명이 있고 한국어 핫라인, 한국어 인터넷 서비스, 한국어 통역서비스는 물론 한인 전용 병원버스와 한인 기사가 한인환자들을 병원에 데려오고 집까지 데려다 준다. 산모에게 미역국을 제공하는 등 한인환자에게 한식을 주고 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연 300달러의 회비로 내과, 산부인과, 피검사 등을 해주는 회원제도도 있다. 저소득자에 대한 웰페어 수속, 현찰로 병원비를 낼 경우 할인혜택을 주기도 한다.
웨스트우드의 본원 뿐 아니라 클로스터와 잉글우드 클립스에 있는 이 병원의 분원에서도 코리안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그야말로 미국에서 유
일한 한인종합병원인 셈이다. 그래서 이 병원에는 뉴저지 뿐만 아니라 뉴욕지역과 커네티컷에서도 한인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또 멀리 플로리다에서도 수술환자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이 병원에서 코리안 프로그램과 유방암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부사장으로 병원장 바로 아래에 있는 부사장 5명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원래 금융회사에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 2002년 조기 은퇴하여 이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제 2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서울여상을 나와 JP 모간의 서울지점에 근무하면서 미8군 내 메릴랜드대학을 나온 그는 지난 1981년 유학을 위해 도미한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다. 회사측의 배려로 월스트릿에 있는 JP 모간의 본사로 자리를 옮겨 이 회사의 국제금융부, 해외지점 담당, 은행대출 담당, 본사 비서실 등 다양한 직책에서 근무했다. 해외지점을 담당할 때는 아시아, 남미, 유럽 각국을 여행했고 한국의 IMF 위기 때는 은행담당 아시아 책임자로 싱가폴에서 근무했다. 2001년 9.11 테러 때 테러현장에서 2블럭 떨어진 JP 모간 본사에서 생생하게 테러를 경험하기도 한 그는 다음 해인 2002년 관리이사직을 끝으로 25년간 근무해 온 이 회사에서 조기 퇴직했다.
미국인들은 평생동안 일한 직장에서 퇴직한 후에는 봉사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강철왕으로 불리는 앤드류 카네기의 경우 평생동안 키운 강철기업을 1901년 월 스트릿의 모건상회에 매각한 후 실업계를 은퇴했다. 그는 그 후 죽을 때까지 18년간 3억5,000만달러의 기금으로 카네기홀, 카네기재단, 카네기 공과대학 등 문화교육시설을 설립하고 자선사업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월 스트릿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미국인들은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최씨도 퇴직 후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애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회사에서 받은 혜택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JP 모간을 퇴직한 그 해 최씨는 자원봉사로 알게된 사람의 소개로 패스캑밸리 병원의 보드 멤버가 되었다. 보드 멤버는 병원의 운영을 조언하고 감사하는 일을 하지만 보수가 없는 자원봉사직이었다. 그런데 한인환자들이 이 병원을 찾는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한인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병원측에 제의하여 코리안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현재 코리안 프로그램이 실시하고 있는 모든 내용은 그 때 최씨가 만든 비즈니스 플랜을 병원측이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코리안 프로그램을 운영할 책임자가 필요했다. 병원측의 요청으로 최씨는 보드 멤버직을 사임하고 정식 직원인 코리안 프로그램의 담당이사로 영입되었다
고 한다.
그 후 병원장이 바뀌었는데 새로 부임한 병원장이 코리안 프로그램에 감명을 받아 암센터를 확장하면서 최씨에게 유방암센터의 책임을 맡겼다. 그래서 그는 유방암센터와 코리안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부사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유방암 퇴치를 위한 걷기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행사로 모금한 돈을 한인 저소득층을 위한 일과 유방암 교육 프로그램에 쓰겠다고 했다.최씨가 미국병원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한인들이 미국의 의료제도를 잘 몰라서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 곤욕을 치루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 올 때 주치의의 추천을 가져와야 하고 약을 살 때는 처방전을 가져가야 하는데 이런 것을 잘 챙기지 못해서 낭패를 겪는다는 것이다. 또 유방암이나 고혈압, 당뇨 등 질병을 정기검진으로 조기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데 정기검진을 소홀히 하여 병을 키우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질병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씨는 병원 일 외에도 거주지인 뉴저지주 해링턴 팍의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중이며 뉴저지한국학교 이사, 잉글우드의 커뮤니티센터 이사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미국인들에게는 한국 문화와 한인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한인들에게는 미국문화와 미국인들을 이해시키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보험회사의 부사장으로 일하는 남편과 두 딸이 있는 단란한 가정의 주부이기도 한 최씨는 앞으로 한인들을 위한 병원사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 병원 안에 한인환자들만을 위한 한인병동을 따로 지어 한인들이 한 곳에서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한인노인들을 위한 서비스와 여성들을 위한 산과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 한인병동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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