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워싱턴의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안고 1974년 10월4일 밤 워싱턴에 왔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아버지, 큰오빠 그 외의 식구들을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다음날 아침, 식구들 모두가 직장으로 출근한 후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집 앞에 자동차들만 쭈욱 서있는 것이 놀라웠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무엇을 해서 밥을 먹고 살 것인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큰오빠의 말을 듣고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서 광고란을 찾아보니 키펀치 오퍼레이터(Key Punch operator)를 구한다는 곳이 많아서 큰오빠의 도움으로 워싱턴 16가에 있는 학원을 찾아갔다. 그 곳에서 2달 코스를 밟고 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키펀치가 무엇인가 하면서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그 물체가 어떤 것인가 했지만 배우고나니 흥미로웠다. 그래서 신문을 들고 줄을 쳐가면서 훑었다. 마침 내 눈에 미국에서 29개의 백화점 지점을 갖고 있는 헥스에서 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전화로 약속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그 건물에 들어서니 시험을 쳐야한다고 했다. 영어와 타이핑 시험인데 다행히 두 가지 다 합격하여 그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이후 7개월을 채우고 남편과 상의해서 장사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곳저곳 알아보다 고등학교 옆에 스토어를 사서,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 우리 모두 속으로는 겁이 났지만 “당신과 내가 힘을 합친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남편에게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런 나의 말 한마디가 남편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상점을 사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점점 세월이 흘러서 애들은 자라고 학교생활도 익숙해지고 사업도 자리가 잡혀갔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에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부부의 그림을 상상했다. 누구든 한 사람이 제 몫을 하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게으를 수가 없었다. 미국에 올 때에도, 오래전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왔을 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역사에서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한 각오로 이 땅에 왔으니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나 삶의 일선에 서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때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곤 한다 .
26년을 장사하면서 여러 번 강도를 만난 적이 있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는 그 자리에 다시 서서 장사를 해야 했다. 장사를 하며 힘든 것은 그 당시 제일 한인침례교회(현재 워싱턴 지구촌교회)에서 10년동안 반주자로 있으면서 피아노, 오르간을 치면서 씻을 수 있었다.
오래전에 은퇴를 하고 지금은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그동안의 고생은 옛이야기가 되어 손녀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곳에 와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 땅에 올 수 있었던 것, 또한 어려운 일을 당했을때도 안전하게 보호해주신 것을 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자식들이 다 자라서 하는 말이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신 것을 보면 그 이상의 스승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니 우리의 고생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생각하며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
박혜자 (포토맥 문학회,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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