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서유럽, 미동부, 일본 등 생의 역마를 타고 지구 곳곳을 다녔다. 좋은데 멋진데 아름다운데 열심히도 찾아다녔는데, 잔뜩 모은 굿즈들만 그 시간을 증거할 뿐, 지나간 여행은 돌아오지 않는다.
여행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미학. 여행이란 일상에서 아득해지는 경험, 삶의 풍경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 의도적으로 삶의 변수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일이다.
우리가 묵었던 북해도 산속 호텔은 고즈넉했다. 세상과 한참 떨어져 일상의 괴로움은 쫓아오지도 못하도록. 대설산 꼭대기까지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 세상을 내려다봤다.
가슴이 웅장해졌다. 입가에 미소를 매단채 잠들었고 마음이 전나무처럼 자란 것 같았다.
새벽부터 눈이 쏟아졌다. 호텔 안에서 조식을 먹을 땐 와! 너무 멋진 걸! 낭만이 후식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우리는 소도시 오비히로로 이동해야한다. 눈보라로 교통이 통제되어 두시간 거리를 빙빙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그치지 않는 설국의 눈눈눈.
낭만이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앞이 보이지않을 정도의 눈보라로 화이트아웃. 모든 차들이 비상등을 켠채 엉금엉금. 자연의 하얀 몸부림 앞에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됐다.
이렇게 겸손을 배웠으니 이제 그 흰손으로 부드럽게 안아주세요.
7시간 눈길을 달려 마침내 오비히로 시립 미술관에 도착했다. 보고싶던 밀레의 그림을 만났다. 문닫을 시간이 가까운 미술관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눈보라의 사선을 막 넘어온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위로였다. 모든 그림들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바르비죵 화가들의 자연에 대한 경외에 깊이 끄덕거리며.
그림의 모든 순간이 기도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목동과 그의 양들도, 호숫가에서 달게 물을 마시는 소들도, 무리를 돌보는 사슴도, 가만히 바느질하는 여인도.
단지 평화로운 일상을 그린 게 아니라, 그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삶의 기도 같았다.
낭만과 공포, 평화와 불안, 삶과 죽음이 동행하고 있는 게 우리 삶이다. 늘 행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안할 것도 없다. 그저 삶의 모순과 진리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면 되겠다. 이번 북해도 여행에선 순응과 감사를 배웠다. 그걸 가르쳐준 눈보라에게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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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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