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1974년 8월 동생과 함께 맨 주먹으로 메릴랜드에 사는 누님만 믿고 이 광활한 대륙에 발을 디뎠다. 돈은 물론, 변변한 직장도, 강인한 체력도, 특별한 기술이나 재주도 없어 언어가 틀린 이국에서 헤쳐 나가야 할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에는 늘 황량한 바람이 일곤 했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친구들과 캠핑을 제법 다닌 경험이 있었는데, 아내는 전혀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번째 여행은 캠핑을 가기로 하고, 다니던 대학원이 여름방학을 시작하자마자 부푼 마음으로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으로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AAA에서 여행 안내를 해 준 분이 애팔라치아 산맥인 블루리지 파크웨이로 가면 경치가 좋다 하여 그 길을 택했는데, 아뿔사!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이 파크웨이는 잠시 달린 후에 큰 고속도로로 빠져서 가야 하는데 경험이 없던 우리는 그 꼬불꼬불하여 속도 제한이 낮고, 위험한 산길을 줄곧 달렸다.
아주 오랜 시간을 운전하여 몸은 피곤해오고, 해가 져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개솔린도 많이 안 남고, 게다가 가랑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니 심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GPS는 물론 없을 때라 우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고, 산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그 황당함이란… 기온이 내려가서 옷을 껴입으려 하니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옷을 넣은 트렁크를 집에 놓고 온 것을 알았고, 엎친데 덮친 격이라 정말 울고 싶었다. 그렇다고 운전을 중단할 수도 없어 무조건 갈 데까지 가보자고 운전을 계속하는데, 산 고개를 넘어가니 멀리 왠 어린 소년이 길가에 홀로 서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허깨비를 본 것은 아니고, 분명 소년임을 확인한 후 그 반가움과 안도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표시이니까. 소년의 말대로 조금 더 가니 과연 불빛도 찬란하게 반짝이는 마을이 나왔는데, ‘기사회생의 기쁨’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그곳이 애쉬빌이란 것은 다음날 아침에 알았다. 저 멀리 보이는 스모키 마운틴은 이름에 걸맞게 온 산이 안개구름에 쌓여 있어 신비함을 자아냈다. 어제의 그 악몽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이제 드디어 아내와 같이 첫 캠핑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가슴은 마구 뛰었다.
산에 도착하여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에 텐트를 치는데, 오랜만에 해 보니 잘 안되어 낑낑대는데, 옆의 사람이 조용히 다가와 친절하게 도와주던 일, 규정상 밤 10시 이후에는 아무 소리도 못 내게 되어 있는데, 그 시간이 되니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져서 우리를 감탄케 했다. 공기가 맑고 조용하니 계곡 시냇물이 마치 텐트 바로 옆에서 졸졸 흐르는 것같이 들려, 그 소리를 들으며 텐트 안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산속의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버너에 끓여 먹은 아침커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첫 여행이라 그런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해마다 자동차 여행이나마 해왔고, 여유가 생긴 후로는 가끔 해외여행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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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효 (약물학 박사, M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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