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43)은 몇 해 전 한 영화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암에 걸리면 암에 걸려 죽어가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kg이 넘게 체중을 줄여가며 촬영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감독 박진표)를 찍은 직후였다. 몇 편의 영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 ‘하얀거탑’(2007)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을 거친 그때의 그는 마치 ‘연기 구도자(求道者)’처럼 보였다. 극도의 몰입, 자기 학대, 침전, 폭발 그리고 위악(僞惡)은 배우 김명민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지난해 드라마 ‘개과천선’ 제작발표회에서 본 김명민도 그랬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고 진중하게 행동했다. 잘 웃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다. 그는 이번에도 배역에 푹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좀 그랬죠? 그 때가 시기상 좋지 않았잖아요. 이빨 보이지 말자고 했어요. 그래도 너무 심했나.(웃음)"
당시는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있을 때였다.
최근 개봉한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감독 김석윤)에 출연한 김명민은 마치 딴 사람 같았다. 그의 말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경쾌했다. 조금의 틈만 보이면 농담을 던졌고 거침없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속편에도 출연하신 이유가 뭐죠?"
“하고 싶어서요.(웃음)"
"나이들어서 액션 연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액션이 없었어요."
“한 번 해보세요. 얼마나 힘든데. 다 아시면서 그러세요.(웃음)"
그와 함께 출연한 오달수는 김명민을 이렇게 평했다. “명민 씨는 ‘쌈마이’에요. 관객이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잖아요."
이번 영화에서 김명민이 맡은 역할은 조선의 명탐정이자 천재적 발명가인 김민이다. 근데 이 인물,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허술하고 어설픈 데가 있다. 그래서 웃긴다. 김명민은 자신이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과는 조금 다른 캐릭터인 김민을 물 만난 고기처럼 연기한다.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신나서 연기하는지 보인다.
“연기는 다 다르죠. 제 뼈를 깎고 우울감에 빠지고 그래서 합일점을 찾아야 하는 배역이 있어요. 하지만 김민은 그런 인물이 아니잖아요.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어요. 굳이 깊게 들어갈 이유가 없죠. 기본적으로 유쾌한 인물이니까요. 제 지금 상태도 그런 인물을 연기한 것에 조금은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은 수사물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코미디다. 파트너인 오달수는 많은 영화에서 발군의 코믹 연기 실력을 보여준 배우다. 김명민은 영화의 전작인 ‘조선명탐정:각시투구 꽃의 비밀’에서 코미디를 보여준 적이 있긴 하지만, 전문 분야는 아니다.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뺀 다른 극에서 김명민이 코미디 연기를 한 적은 없다.
연기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우리가 아는 김명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코미디 영화지만, 코믹 연기는 없어요. 그냥 연기할 뿐이죠. 제가 연기하는 사람이 재치가 있고, 위트가 있는 겁니다. 영화는 장르가 있을 수 있지만, 연기는 장르가 없거든요. 똑같은 말로 가벼운 연기라는 것도 없어요."
김명민은 인터넷에서 ‘명민좌’로 불린다. 김명민에 ‘연기본좌’를 합성한 말이다. 그의 연기력이야 드라마와 영화 양쪽 모두에서 더할 나위 없지만, 강렬함에는 차이가 있다. 드라마에서 김명민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렇지 않다. 이상한 일이다. 그에게는 항상 시나리오를 볼 줄 모른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는 “내가 볼 때는 좋았었는데…"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판의 말을 “수용한다"고 말했다.
“문제점이 있다면 찾아서 개선해 나가는 게 더 발전적인 방향이라고 봐요. 제가 잘못한 점도 분명 있을 거고요. 이미 돌이킬 수 없어요. 열심히 해야죠. 비평가들의 말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신경은 안 쓴다는 게 맞을 거에요."
2011년 개봉한 ‘조선명탐정:각시투구 꽃의 비밀’은 김명민의 최고 히트작이다. 그해 설, 무관심 속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48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여 설 극장가를 장악했다.
하지만 속편은 다르다.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게다가 전편의 감독과 배우가 그대로 뭉쳤다. 기대대로 ‘조선명탐정’ 후속작은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명민에게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아까 즐겁게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웃음) 진심으로 즐겁게 하면 크게 부담감이 없어요. 이상하죠. 그런데 ‘이 영화 무조건 잘 돼야해’라고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의심하게 돼요. 흥행에 대한 부담감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1편 때 저희는 철저한 무관심을 겪었어요. 그런 게 저희를 의기투합하게 했어요. 이번에도 그래요. 아마 잘 될 겁니다."
김명민은 연기 구도자가 아닌 연기 쌈마이에 더 가까워 보였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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