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미생’은 특이한 드라마다. 출연 배우가 모두 주목을 받는다. 시청자의 관심이 주인공급 배우 두, 세 명에게 쏠리는 보통 드라마와는 상황이 판이하다. ‘미생’의 성과 중 하나는 배우 한 명, 한 명을 다 살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배우 전석호(30)도‘미생’의 수혜자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 ‘낮술’로 알려진 노영석 감독의 새영화 ‘조난자들’(2014)에서 주인공을 맡았지만 그 때도 그는 무명 연극배우일 뿐이었다.
이제 ‘하 대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전석호라는 이름은 몰라도 하 대리는 안다. 하 대리를 떠올리지 못해도 ‘미생에서 안영이를 괴롭히는 나쁜 대리’라고 설명하면 다 안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시쳇말로 그는 떴다.
“좋지 않다면 거짓말이죠.(웃음) 하지만 애초에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좀 은둔형이거든요. 부끄러운 게 더 커요.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꿈꾸는 건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는 거예요. 지금 저에 대한 이 관심은 점차 없어질 겁니다.”
지난 2월 영화 ‘조난자들’ 시사회 때 전석호를 처음 봤다.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 그는 연예인이라고 할 수 없는 차림으로 등장했다. 삭발에 가까운 머리, 셔츠와 청바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그 때보다 훨씬 유명해졌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 그는 청바지에 운동화, 패딩점퍼를 걸치고 매니저도 없이 혼자 나왔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보다 머리카락이 조금 더 자란 것뿐이었다.
“올해 8월에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공연을 하고 있었죠.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못 한다고 말했어요. 연극 때문에요.”
연극배우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전석호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얼굴을 알릴 수 있고,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드라마 출연은 좋은 기회다. 하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고 단박에 거절했다. 공연이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때 전석호는 연극 ‘인사이드 히말라야’를 하고 있었다. “전 포기가 빨라요”라며 웃었지만 사실 속내는 따로 있었다.
“맞아요. 좋은 기회였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연극이 더 중요했어요. 먼저 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도 있어요. 그걸 떠나서라도 전 연극을 정말 좋아해요.”
전석호는 2003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좋은 교수님과 좋은 선배들을 만나면서 연극에 빠졌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연극에 대해 말할 때 더 활발해졌다. 신 난 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가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라며 “그 매력 때문에 연극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 영화 다 좋아요. 요즘 3D 영화가 나오잖아요. 근데 그건 가짜잖아요. 실제로 입체가 아니잖아요. 연극은 진짜 3D가 맞죠. 3D뿐인가요. 4D죠, 4D. 배우 입에서 침 튀고 이런 게 다 보이잖아요.(웃음)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죠. 연극에는 진짜 사람 냄새가 나요.”
전석호는 인터뷰 내내 ‘사람 냄새’라는 말을 11번 썼다. ‘미생’을 말할 때도 그는 “‘미생’을 한 이유는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연기하고 있는 하 대리에 대해서도 “하 대리는 안영이를 증오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 꼭 있어요. 있을 법한 사람을 만들면 사람 냄새가 나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 부분에서 단호했다.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솔직히 ‘인간’이 느껴지지 않고,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 작품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전 최고가 되고 싶어요. 마이클 조던이나 스티브 잡스처럼요. 우리가 그 사람들의 돈을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진짜를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연기를 제일 잘 하겠다’ 이런 게 아닙니다. 세상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연기하는 거예요.”
뉴시스의 사시는 ‘진실의 울림은 빛이 되고 진실의 빛은 울림이 된다’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전석호는 사무실 한켠에 걸려있는 이 글귀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걸려 있던 게 뭐죠. 사훈 같은 건가요. 그 말을 보는 순간 ‘이게 뭐지?’ 했어요. 정말 멋있는 말인 것 같아요. 전 하 대리를 진심으로 연기하거든요. 진실된 마음을요. 제 연기가 빛이 되고 울림이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요. 전 연기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들어있다고 믿어요.”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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