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막바지인 요즘 콜로라도, 펜실베니아 등 대부분 접전 주들의 TV화면에서 젊은 제대군인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의원 선거 양당 후보들의 캠페인 광고와 현장에 이들이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던 젊은 군인들이 제대후 고향으로 돌아와 선거전에 뛰어들어 활발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유세장에서 찬조 연설을 하기도 하고 가가호호 방문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공식적 정당지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는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지출한 신설 단체엔 15만명의 제대군인들이 가입하기도 했다.
“정치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수행해야할 또 하나의 영역입니다”
이라크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찬반 여론 또한 팽팽한 이번 선거에서 젊은 제대군인들은 캠페인 자원봉사단의 중요한 한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방부는 아직도 현역군인의 정당 활동을 금지한다. 그러나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에 참전 후 제대한 86만9,000명의 젊은이들에겐 정치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 국가에 대한 의무를 수행해야할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제대군인들에 대한 별도의 여론조사가 실시된 바는 없다. 존 매케인이 제대군인 표를 더 얻을 것으로 기대되고는 있지만 젊은 이라크 참전 제대군인들은 양당 진영에 골고루 포진해 밤낮없이 뛰어왔다. 오랜 기간 해외파병으로 미국을 떠나있던 것도 온라인으로 연결된 요즘 세상에선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최전방의 군인들 역시 정치 블로그와 CNN등을 통해 유세장의 최신 뉴스를 접하고 있어 귀국해 곧바로 유세장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라크 미군파병 증강 당시 데이빗 페트레이어스 사령관의 공보장교로 복무했던 크리스 피난(31)은 이라크 주둔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고 말한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아랍어를 하는 그는 아랍지도자들과의 회의에 참석해 그들이 석유법과 종파간 화합등 국내 안정을 위한 약속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미군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왔지만 이라크 지도자들에게선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망한채 지난여름 귀국한 그에게, 이라크인들이 적극적으로 자국의 운명을 개척하도록 하기 위해 미군의 부분 철수를 단행하겠다는 버락 오바마의 주장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제대하자마자 그는 선거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금년 여름 그는 같은 이라크 참전 출신으로 이미 선거운동원으로 일하고 있는 필립 카터로부터 민주당 전당대회에 오라는 초청을 받았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피넌은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등 정치의 첫 경험을 가졌다. 그를 포함해 함께 일한 참전 제대군인들은 25명, 마치 하나의 소대 같았다. 전당대회장 마루바닥에서 함께 잠자며 끔찍했던 전쟁의 경험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고 국가를 위해 같은 목적으로 뛰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며 새로운 의욕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군인가족들이 많이 사는 접전지에서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왜 이라크에서의 조기 철군이 궁극적으로 미국과 이라크 양국을 위하는 길인가를 진심을 다해 설명하며 오바마 득표운동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 후보의 유세장에서도 이들과는 시각이 다르지만 애국심은 똑같이 열렬한 또 다른 젊은 제대군인들을 만날 수 있다.
필라델피아의 한 식당, 공화당 연방하원 후보 톰 매니언을 위한 기금모금을 위해 동분서주한 데이빗 벨라비아(33)와 피트 헥세스(28)는 ‘자유를 위한 참전용사’라는 단체를 조직한 핵심 멤버다. 이 단체는 ‘이라크전 승리를 위해’ 금년 선거 캠페인 TV광고에 600만 달러를 지출했다.이들이 정치에 뛰어든 주목적은 이라크에서 전사한 동료들을 위해서다.
“우리부대에서만도 37명이 전사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의 희생은 내게 너무나 숭고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벨라비아의 목소리는 격한 감정으로 조금씩 높아진다.
그가 선거운동을 돕는 톰 매니언은 그 자신 해병대 소령 출신이기도 하지만 특히 지난 4월 이라크에서 전사한 트래비스 매니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들의 전사가 아니었다면 정계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매니언 후보는 “무언가 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라고 말한다.
많은 이라크 참전 군인들은 비슷한 느낌을 토로한다. 피넌이나 벨라비아처럼 직접 유세장을 발로 뛰며 자신의 사명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 올린 조우 쿡이라는 참전군인의 비디오는 1,100만 명이 다운로드 해 갈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 비디오에서 쿡은 자신의 일리노이 시골집, 성조기 옆에 서서 “디어 미스터 오바마”라고 말문을 연다. “이라크에서 12개월을 지낸 나는 이 전쟁이 실수가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당신은 이라크전쟁이 실수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국가봉사와, 자유증진을 위해 희생된 모든 사람에 대한 모욕입니다…” 이 비디오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쿡이 의족을 끼고 사라져가는 것으로 끝난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이 비디오를 비롯한 제대군인들의 적극적 선거운동은 그러나 한편으론 우려를 낳고 있다. 찬반으로 맞서는 이들의 당파적 대결은 어디까지 치달을 것인가. 이들의 순수한 애국심이 선거 책략의 한 부분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 등등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념보다는 실용주의를 택해온 군의 오랜 전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벨라비아 역시 누가 되든 선거가 끝나면 자신들의 노력은 의회가 이라크인 통역관들의 미국망명을 보장하는 등의 초당적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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