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돔지역 구리 제련장 기원전 10세기 것으로 밝혀져
성경에 나오는 에돔 지방에서 발견됐던 대규모 구리 제련장이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최소 3세기는 더 일찍 만들어졌으며 이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의 시대와 상당히 일치한다고 연구가들이 27일 발표했다. 3,000년 전의 솔로몬 왕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지난 20년간 존재 자체에 의구심을 나타내 왔다. 이유는 성경의 기록을 뒷받침할 만한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고 기원 전 10세기 이스라엘과 에돔에는 성채와 대형 조형물을 건설하고 대규모 광산 등 복잡한 토목공사를 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회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UCSD 레비 교수 “솔로몬 통치기와 일치”
솔로몬 사후 이집트 침략 증거물도 나와
비판론 “인간 거주흔적 없어 단정은 무리”
현재의 요르단에 소재한 이 구리 제련장을 방사성 탄소로 연대 측정해 보고한 UC 샌디에고의 고고학자 토머스 레비는 “이것은 현대의 성경 고고학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솔로몬이 존재했는지에 대해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적 데이터를 찾아냈다. 우리는 다시 경기를 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UCLA 고고학자 윌리엄 슈니드윈드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레비가 전적으로 맞다. 과학적 증거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레비가 방사성 탄소 연대를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시기에 이곳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구리 제련장이 유목민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이용됐을 뿐 제국은 물론 왕국이나 도시국가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고고학자 피오트르 비엔카우스키가 이런 주장을 편다. 그는 추가 증거 없이 성경의 솔로몬과 연관시켜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은 “성경의 솔로몬에 관한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난 2세기 동안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거든다. 그는 “구약의 이야기들은 기원 전 5세기 기자들의 관심사와 신학,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기술한 것으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구약에 따르면 솔로몬은 고대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끈 다윗 왕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프라테스에서부터 아콰바 만 북단에 이르는 땅을 통치했다. 예루살렘에 첫 성전을 짓고 금을 엄청나게 모았으며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를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통치하다 기원 전 931년 사망했다.
그러나 핑켈스타인과 다른 학자들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거주자가 거의 없었으며 제국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들 ‘미니멀리스트’들은 기원 전 8세기까지는 이스라엘이 진정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인다.
현재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곳은 24에이커에 이르는 키르밧 엔-니히스라 불리는 곳이다. 이 말은 아랍어로 ‘구리의 폐허’라는 뜻이다. 사해 남쪽으로 30마일, 그리고 유명한 고고학 장소인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30마일 북쪽에 소재해 있다. 이곳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대 구리 제련과정에서 생긴 대규모 검은 광재(slag) 더미이다. 제련에 필요한 열을 만드는 데는 나무가 연료로 사용됐기 때문에 이때 만들어진 숯으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2년 전 레비는 방사성 연대 측정 결과 기원 전 10세기부터 채광이 이뤄졌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자 핑켈스타인을 위시한 일부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에돔 인근 고지대에서 기원 전 8세기 이전에는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비판에 맞대응하기 위해 레비 팀은 제련장 중앙 가까이에 있는 20피트 깊이의 광재를 파 들어가면서 연대 측정을 했다. 숯과 유물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후 옥스포드 대학의 물리학자인 토머스 하이햄에게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광재 밑바닥 층은 기원 전 940년께 이곳에서 약 40년간에 걸쳐 광범한 채광이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9피트의 광재가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기원 전 910년께 갑자기 채광이 중단된 채 한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다가 기원 전 9세기에 다시 채광이 재개된 것으로 드러났다.
채광이 중단된 시기의 광재층에서는 동 나일강 삼각주의 투구풍뎅이와 이집트 무트 여신과 관련된 부적이 발견됐다. 레비 교수는 “흥미로운 의문은 이 유물들이 솔로몬 사후에 팔레스타인의 상당 부분을 정복했던 이집트의 파라오 셰송크 1세(성경에는 시삭으로 기술돼 있음)와 연관이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의 기록은 셰숑크의 군대가 키르밧 엔-니히스에서 동쪽으로 8마일 떨어진 하즈바를 정복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레비는 “우리는 고대의 기록이 말하는 것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면서 “그렇지만 이번 조사는 고고학적, 과학적 데이터가 성경과 일치함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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