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총선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4.9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다수당이 되느냐 하는 것은 새로 탄생한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비전으로 내세운 ‘경제 살리기’, ‘선진화’를 성공시키는 데에 중요한 관건이 된다. 2차 대전 후 선진화를 이룩한 국가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정치적인 안정’이 밑받침이 되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18대 총선 공천은 한마디로 정당정치를 후퇴시킨 무원칙 공천의 결정체였다”, “상향식 공천은 사라지고 경선은 한군데서도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맹비판한 것과 같이 한나라당 공천은 현역 지역구 의원 40명을 탈락시키는 대 개혁(?)의 공천이었다. 공천 파동으로 인하여 한나라당은 친박연대의 무소속 출마와 파벌간 파워게임으로 과반수 다수당이 되지 못하고 향후 5년간 국회의 정치논쟁으로 한국의 ‘선진화’는 뜬 구름 잡는 일이 될지 모를 일이다.
4.9 총선 관측가들은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 대 통합민주당의 싸움이 아니고 한나라당 대 한나라당의 선거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공천에서 떨어진 많은 현역 의원들이 친박연대라고 하는 ‘섀도우 한나라당’의 이름으로 총선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4.9 총선이 ‘선진화’에 관련된 정책이슈보다도 계파간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된 것은 한국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제도에서 연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당의 공천심사제도가 일관된 정당의 국정정책을 추구하기 위하여 도덕성, 의정활동, 경쟁성 등을 기준으로 하여 엄격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면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내실을 열매 맺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 민주국가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중앙당의 공천제도가 위에 열거한 기준보다는 계파간 권력지향과 정치자금 연줄이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정당 공천 역사를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중앙당 공천제도가 20세기 초까지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정당의 의회 다수당 획득에 대한 투쟁이 격화되면서 중앙당 공천제도의 폐해가 심해지기 시작하자 ‘풀뿌리 민주주의’의 방식인 ‘예비선거’(Primary)와 ‘당원회의’(Caucus)에 의한 공천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에는 이 공천제도가 대통령 선거와 연방의회 선거뿐만 아니라 주와 지방의 각종 선거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비선거 제도는 각 지역의 등록 유권자가 정당후보를 투표로 선택, 공천하는 제도이다. 투표자가 어느 정당이든 한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는 ‘개방 예비선거’(Open Primary) 제도와 정당에 등록된 당원이 그 당의 후보자를 선택하는 ‘폐쇄 예비선거’(Closed Primary) 제도가 있다. 당 간부회의 제도는 지역에 따라 당원들이 모임을 갖고 토론과 지지연설을 한 후 투표로 정당공천자를 뽑는 제도이다.
예비선거 제도와 당 간부회의 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제도로서 후보자의 도덕성, 의정활동, 경쟁성 등이 주권자의 심판에 의해 점검된다고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주권자의 심판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의 판단이 포퓰리즘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공천제도는 예비선거를 하지는 않지만 지방당 간부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중앙당 공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한국 정당 공천의 역사는 건국 이후 중앙당 공천 일도변의 제도이었음을 감안할 때, 또한 ‘한나라당 대 한나라당’의 대결이라는 4.9 총선의 기현상을 목격하면서, 한국의 정당 공천제도도 중앙당 공천에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 공천 제도를 가미한 복합 정당 공천 제도를 창출하는 것이 요망된다고 본다.
백순
연방 노동부 선임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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