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계한 위대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남긴 족적
▶ 세계 주요 도시에 작품 영예의 프리츠커상 수상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 프리츠커 상과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을 여성 최초로 받았다.
지난 31일 심장마비로 타계한 자하 하디드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건축가로 한국인들에게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타전된 후 전세계 언론들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남긴 이 걸출한 건축가의 족적을 자세히 소개하는 한편 그의 죽음이 건축계에 미치는 적잖은 영향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최근 기사를 요약해본다.
카타르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자하 하디드의 ‘알 와크라 스태디엄’. 수백명이 일하는 그녀의 건축 사무소는 세계 곳곳에 유작으로 남겨진 수십개의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한다.
자하 하디드가 향년 65세로 떠났다는 소식은 그녀가 태어난 이라크 바그다드로부터 뉴욕, 런던뿐만 아니라 그의 건축물이 있는 중국 광저우까지 건축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을 달구고 있는 그 상실감은 주로 여성 건축가들 사이에 터져나온 것이다. 그들은 하디드를 성차별이 심한 남성 지배적 전문분야에서 자신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 희귀한 등불처럼 여겨온 사람들이다.
“여성 건축가의 한사람으로서 우수한 창조적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 타계했다는 데 대해 충격과 슬픔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그는 세계 정상의 남자 건축가들과 겨룰 수 있는 여성이었으니까요” 애틀란타의 건축가 지셀라 슈미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녀는 자기 전문분야에서 강인한 여성이었어요. 우리로서는 엄청난 손실이지요”
런던의 건축협회 전 회장이고 하디드의 친한 친구였던 에바 지리크나는 가디언 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와 겨룰 수 있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성 건축가라는 사실에 대해서만 떠드는 일을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이 그녀에게 표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헌사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그녀는 근년 들어 여성들의 진보가 이루어졌지만 건축계에서 여자가 잡을 따내거나 남자와 같은 임금을 받는 일은 무척 힘들다고 덧붙였다.
“우리 고객 한 사람은 자기 프로젝트에서 여자 직원은 한명도 일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죠” 지리크나의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하디드의 죽음을 추모한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젊은 건축가 압둘라 마무드는 그가 작년에 졸업한 다마스커스 대학의 자기 클래스는 70%가 여학생이었다고 말한다. 건축가라는 전문직종의 성비 균형이 어떻게 전환되고 있으며, 하디드의 영향은 아무리 과장해도 모자라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곳의 젊은 건축가들, 특별히 여성들에게 하디드는 위대한 공주와 같다”고 마무드는 다마스커스에서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치 이런 분위기였죠. 자하 하디드가 런던에 가서 위대한 건축가가 되고 올림픽 경기장을 짓고 중국과 수많은 곳에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못 한단 말인가? 나와 함께 공부했던 여학생들은 그런 마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하디드는 건축가 최고의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다. 그 상이 제정된지 4반세기만인 2004년이었다. 그 이정표적 사건 이후에도 미국내 여성 건축가의 숫자는 24%에서 25.7%(노동청 통계)로 아주 소폭 상승했을 뿐이다.
게티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는 필립 존슨, 마이클 그레이브스, 피터 아이젠만 등 엘리트 건축가 몇 사람이 뉴욕의 센추리 클럽에서 가끔씩 캐주얼하게 모여 디너를 함께 하던 모임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내 기억으로 자하는 그 모임에 참석한 첫 번째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서 어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한 일들이 높이 평가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처음에 하디드는 자신이 여성들의 롤 모델이라는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여성 건축가로 불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여성 건축가였습니다. 그녀는 단지 건축가였고, 최고 중의 한명이었죠”라고 콜럼비아 대학 건축대 학장인 아말 안드라오스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라는 점, 서구인이 아니라는 점, 세계 곳곳에서 공부했다는 점으로 인해서 분명히 신기원을 이룩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디드는 하나의 심볼로서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이번 달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될 그녀의 책 ‘여성 건축가들은 어디에 있나?’(Where Are the Women Architects?)에서 버팔로 대학 건축과의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 대리의장은 하디드가 2012년 아키텍트 저널이 수여하는 첫 번째 제인 드류 상(Jane Drew Prize)을 수상했을 때 CNN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전에는 우먼 아키텍트, 여성 건축가라고 불리는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는 건축가지, 단지 여성 건축가인 것은 아니니까”라고 말한 하디드는 “남자들이 내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하곤 합니다, ‘여자치곤 잘하네’라고. 이제는 다른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기대와 요구가 있음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더 이상 어떻게 불리는지 상관 없습니다”
하디드는 자신이 한 일의 가치에 따라 평가받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늘 그녀의 전문적 성취도보다는 그녀의 겉모습과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붙여넣기를 좋아했다. 아키텍처럴 레코드의 로버트 아이비는 하디드가 프리츠커 상을 받았을 때 언론의 취급에 대해 이렇게 분개한다.
“다른 전문 분야에서 선두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요 상을 받았을 때 그렇게 개인적인 부분을 시시콜콜 들춰내는 일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마리 퀴리 여사에게 패션에 대한 코멘트라든가, 노벨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에게 헤어스타일 칭찬을 늘어놓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죠. 프리츠커 상을 받음으로써 하디드는 그런 급의 최고 위치에 올라선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해 동안 하디드는 고집이 세다는 이유로 계속 비난에 시달렸다. 주위 친구들은 만일 남자 건축가가 그랬다면 전혀 문제도 되지 않을 이야기라고 기막혀한다.
“누구나 그녀는 디바이며, 터프한 여성으로 알고 있어요”라고 건축가 톰 메인은 말한다. “그녀는 터프하죠. 왜냐하면 강인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직종에서 일하니까요. 사실 그녀는 유머 센스가 굉장히 많고 실제론 아주 모성적이며 다정다감한 사람입니다. 아주 웃기고,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며, 연인과 같은 사람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죠”
예일대학 건축과에서 하디드에게 배웠으며 지금은 하디드의 런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테간 부코프스키는 건축계에서 그런 사무실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단지 남녀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하 자신이 롤 모델이었지만, 그녀는 회사에서 여자들이 잘 해내도록 북돋워줌으로써 롤 모델들을 창조해내기도 했습니다”라는 부코프스키는 “그렇다고 남자들을 끌어내린 것이 전혀 아니고, 모든 것을 일과 재능으로만 평가했어요. 성별이 문제라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내가 과거 어떤 건축사무소에서도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그녀가 가버렸다는 생각에 이제는 누구를 우러러보며 일할 수 있을지 너무나 슬퍼집니다”
<뉴욕타임스 본사 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