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公義)의 깃발이 워싱턴에 나부끼고 있다. 이달 말로 예정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워싱턴 방문에 맞춰서다. 한인사회는 미 의회 앞에서 대대적으로 아베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다. 워싱턴 포스트 지에 광고도 낼 계획도 세웠고 모금운동도 진행 중이다. 이번 반(反) 아베 캠페인에는 워싱턴정신대대책위를 비롯해 한인연합회, 주요 한인회, 노인회 등 범 동포사회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동해 병기 캠페인에서 보여준 워싱턴 한인의 힘과 저력이 다시 결집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 분연한 궐기의 태세가 미약한 형국이다. 모금의 실적도 미흡하다. 내 일이 아닌 듯 방관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는 왜 궐기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베의 미 의회 합동연설이 갖는 국제정치학적 함의와 위험성 때문이다.
2015년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미 패권의 쇠퇴와 중-일간 군사적 갈등의 고조로 요약된다. 시발은 다오위다오 섬(센카쿠 섬)을 둘러싼 영토 분쟁이었다. 2013년 11월 중국이 동중국해 해상에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면서 중-일간 군사적 갈등과 미국의 우려는 점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봉쇄, 저지하려는 미국의 대중(對中) 전선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우방들이 속속 참가하고 있는 현실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미국의 파워를 보여준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계획에 미국이 매달리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이러한 시기에 아베의 일본은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2차 대전의 전범국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해 보통국가로 ‘레짐 체인지’를 꾀하고 있다. 집단 자위권 확대와 군비 증강 등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미일동맹의 강화를 외치며 미국의 안보 대리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아베의 미 의회 합동연설은 결국,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아베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합작품인 것이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이나 애슈틴 카터 국방장관이 ‘이제 과거는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가자’고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일본을 앞세우고 한국을 끌어들인 대 중국 견제 전선이 과거사 문제로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 정책기조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이 아베의 방미를 계기로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눈을 감아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베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양국의 우호관계를 다지는 게 아니다. 일본은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미일 동맹의 깃발 아래서 공공연히 무화(無化)시키려는 간계를 꾸미고 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의 역할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의 구상을 방관하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용인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침략과 반(反)인권의 과거사를 희석시킴으로 인해 교과서 왜곡은 물론 독도와 동해를 둘러싼 한-일간의 영토분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역사적 근거를 확보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워싱턴에 사는 우리의 눈앞에서 아베의 구상이 활개 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위안부(성 노예)의 처절한 역사마저 부인하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 처칠의 말이다. 전후(戰後) 70년, 일본은 역사 지우기를 시도하고 있고 그들의 잔혹했던 침략의 상처를 한인들은 망각해 가고 있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도, 사과도 없이….
워싱턴 한인사회는 미 교과서의 동해병기를 이끌어낸 자존심과 저력을 갖고 있다. 인류의 양심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미국에서 우리는 역사를 지켜내야 한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받아내야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의 망령이 다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덮치는 불행을 막아야 한다. 15만 워싱턴 한인들은 모두 그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