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의원’(감독 이원석)에서 상의원(尙衣院) 어침장 임돌석은 “옷에는 예의와 법도 그리고 계급이 있어야 하는 것일세”라고 말한다.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옷을 만들던 공간. 어침장은 상의원의 수장으로 요즘 표현으로 왕과 왕비의 전속 의상디자이너다. 이공진은 반발한다. "사람이라면 늘 편안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하는 것 아닙니까”
임돌석이 정통 코스를 밟은 엘리트 디자이너라면, 이공진은 파격을 즐기는 이단아다. 이공진은 자유롭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옷을 만든다. 저고리의 길이를 줄이고 치마는 항아리 모양으로 풍성하게 만든다. 배래(저고리 소매 밑 부분)를 길게 늘어뜨릴수록 기품 있는 옷차림이라는 통념에 맞서 팔에 딱 맞는 길이로 배래를 줄여 몸매를 부각하는 게 그의 방식이다. 어침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느질을 단 하룻밤 만에 해내는 천재이기도 하다.
배우 고수(36)에게는 늘 ‘착하다‘, ‘모범생같다’는 이미지가 쫓아다닌다.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 덕에 그는 데뷔 초 드라마에서 정직하고 건실한 청년을 주로 연기했다.
이미지와는 달리 고수가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하나의 범주에 묶이지 않는다. 무능한 남편, 까칠한 소방관, 냉정한 군인 등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다양했다. 스릴러, 전쟁물, 로맨스,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수의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고수는 상의원에서 이공진을 연기한다. 그러니까 이 선택은 가장 극적인 결정이라는 것이다. ‘착한‘ ‘정직한‘ ‘건실한’등의 수식어에 갇힌 배우가 ‘자유로운 영혼‘ ‘천재’라는 말로 설명되는 캐릭터를 맡았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공진은 고수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다.
“걱정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보여드리지 않았던 모습이니까요. 주변에서도 그러더라고요. ‘고수가 이공진을 연기한다고?’(웃음) 저에게 특정 이미지가 있다는 건 제가 제일 잘 압니다. 그 틀을 벗고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공진은 아마 고수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일 것이다. ‘상의원’은 두 가지 이야기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돌석과 공진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뮤즈(왕비)를 만난 예술가 돌석의 이야기다.
공진과 돌석은 옷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대립한다. 흡사 좁게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고, 넓게는 세계에 대해 논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연기는 어떨까. 고수는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답이 없죠. 다 달라요.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죠. 제가 아직 연기를 오래하지 않아서 ‘연기란 이런 것이다’고 정의하기는 좀 그래요. 하지만 연기는 계속 전진하는 것이고, 진화하는 거라는 건 알아요.”
고수는 이공진처럼 말하고 있었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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