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은의 목소리에서는 여행자의 냄새가 난다."
시인 겸 극작가 김경주(38)씨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31)의 첫 EP ‘최고은 1st’(2010)를 소개하는 글에 이렇게 썼다. 옳은 비유다. 최고은의 목소리는 이국적이다. 유목민 같은 자유로움이 스며들어있다. 특히 지난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각국에서 여행자의 흔적이 묻었다.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 `아시아 버서스(Asia Versus)’에서 우승했다. 1년 간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타이완, 인도네시아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곡을 들고 참가했다. 앞서 최고은은 지난해 5월 2주 주장원에 선정됐으나 월장원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탈락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패자부활전 티켓을 획득, 연말 최종 결승에 진출했다.
최고은은 결승에서 첫 번째 EP에 실린 `러브(L.O.V.E.)’를 불렀다. 이 곡은 아이튠스를 타고 지구촌 곳곳에 울려퍼지고 있다. 2012년 말과 작년 초에는 유럽에서 노래했다. 독일의 음악기획사 `송스 & 위스퍼스’의 초청을 받아 약 두 달 간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를 돌았다.
경쟁하는 오디션 체질이 아닐 듯한 최고은은 아니나 다를까 “지인의 추천을 받아" `아시아 버서스’에 나섰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줄 기회"라고 여겼다. 우승은 예상하지 못했다.“방송되는 것이니 실수만 하지 말자는 마음이었다"며 쑥쓰러워했다. 대회실황은 국내 KMTV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아시아 버서스’ 출연 전 펼친 유럽투어가 도움이 됐다. “제가 많이 낯설 텐데 현지인들이 감사하게도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노래를 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죠"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아직 작곡이나 기타가 서툴다고 생각했거든요. 무엇보다 심장이 튼튼해졌어요. 투어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다양하게, 열악한 곳에서 공연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정신력이 강해졌죠. `아시아버서스’는 굉장히 큰 무대였는데, (한국을 대표해 심사한) 작곡가 황세준씨가 떨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어요. 제가 갑자기 더 잘 할 수는 없고…, 실수만 하지 말자는 심정이었죠. 호호호.
"최고은의 가장 큰 매력은 목소리다. 기술과 퍼포먼스로 음악에 화장을 덧칠하고 있는 흐름에서 그녀는 날것의 음성 만으로 강한 울림을 전한다. 포크음악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재즈와 국악, 클래식, 탱고,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음악을 아우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하드코어 밴드에서 보컬로 활약했다.
그녀의 노래에는 특별한 가사 없이 의성어처럼 들리는 소절이 상당수다. 특히 `봄’의 새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소절은 노래할 때마다 느낌대로 부른다. 주문 같은 마력에 빨려든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청중과 교감하려는 듯하다.
“유럽 투어 당시 플라멩코 음악을 하는 분과 협연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제 목소리가 하나인줄 알았는데 여러 개라고 하더라고요. 제 목소리가 중성적이면서, 저음이 크거든요. 어렸을 때 판소리를 하면서 성대가 단련된 것 같아요." 실제로 최고은의 목소리에서는 여러 개의 결이 느껴진다. 묵직한 밑둥을 지닌 단단한 나무의 나이테가 연상된다.
주변에 나무가 있듯,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길어올린다. `봄’은 미국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1907~1964)의 `침묵의 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50여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지금은 제가 고민하는 것들이 가사가 되거나 노래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지난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더 큰 도약이 기다리고 있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에이전시 소닉아일랜즈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10월 울산에서 열린 뮤직마켓 `아시아 퍼시픽 뮤직 미팅’ 쇼케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 유럽 진출도 타진 중이다.
“많이 깨달았어요. 제가 그간 주로 혼자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 다른 사람과 소통,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죠." 시를 좋아하는 그녀는 주로 추상적인 화법을 구사해왔다. 이제는 명확하게 단어를 구분하려고 한다. 특히 `활동’과 `작업’을 나눠 진행하고 싶다. “지난해에는 `활동’만 하다보니, 정작 제 것을 만드는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동안 3장의 EP만 발표했다. 가을에 첫 정규 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다. 활동의 흔적과 작업의 결과물이 고르게 담길 듯하다. “앨범의 성패를 떠나 실험적으로 진행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운드적으로 완성도 높은 앨범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2월28일부터 3월1일까지 서울 홍대앞 `벨로주’에서 여는 콘서트는 그간 최고은이 무럭무럭 자라났음을 확인하는 자리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흐름에 따른 12곡을 들려준다.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면 최고은은 또 자라난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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