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과 “함께”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조화(調和)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뜻이다.가족과 더불어 살고, 이웃과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함께 살아가려면 자아성찰(自我省察)의 자질을 갖추어야 하거나 또는 제도적 규율이 필요하다.
이 나라 미국에 살다보면 도덕이나 양심보다는 제도적 규율이 앞서가는 사회임을 느끼게 한다. 손 한번 잡고 흔들면 끝날 시비(是非)를 곧잘 법을 앞세우고 법을 다루는 변호사 없이는 아무 일도 해결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에 매여 살아가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이러한 제도를 앞세워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他)의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양심을 앞세워 살아가는 삶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에도 선한 양심,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간다면 율법을 내세울 필요성이 없으며, 율법의 제정은 옳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범법자들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양심껏 살아가는 사람들을 법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본래의 우리 민족은 어떠한 민족인가? 법은 몰라도 살아가는데 불편하거나 두려움은 없으나 양심엔 부대끼며 잠 못 이루며 자책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족은 있어도 이웃사촌끼리 단란하게 살고, 때를 가리지 않고 누가 찾아와 한 가족이 되어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어설프지 않고. 일을 하고 있을 때 거들어주되 서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자애롭기만한 사람들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건네는 하찮은 말보다는 눈과 눈으로 뜻을 전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정을 통하고 인간으로부터 소외되지도 소외 시킬 줄도 몰라 한가정의 기쁨에 온 고을이 기뻐하고, 한 가정의 슬픔에 함께 목 놓아 우는 이웃과 떠나서는 살 수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은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 함께” 살아왔다. 이러한 우리 선조들의 삶을 통해 오늘 날의 우리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자. 이웃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이웃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여기며 살아 왔는가? 이웃의 기쁨을 시기와 질투로, 이웃의 고통을 가십(Gossip)으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내가 남보다 낫다는 교만으로 남을 얕잡아 본적은 없었는지?
남과 어울려 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남이 내 생활에 어울려 주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솔직히 당황스럽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이웃과 함께 울고 웃고 나눔과 겸손의 진정한 인간성을 지닌 삶이 절실히 요구되는 오늘의 현실임을 누구도 부인 하지 못할 것이다. 새해에는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남의 처지를 이해할 줄도 알고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을 희생 할 수 있는 진정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서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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