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주 포트 콜린스의 로키 산맥의 동부밑자락에는 대학촌이 형성돼 있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그런데 이곳의 적막이 2년 째 깨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협화음이 마을을 휘감고 있다. 성탄절을 앞두고 이런 광경이 부각되면서 주민들은 더욱 착잡해 하고 있다. 성탄절 휴일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이 곳의 갈등은 상징물이 화근이 되고 있다. 포트 콜린스 시정부는 성탄 연휴동안 다운타운에 장식될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유대교의 상징인 가지 9개 달린 촛대 ‘머노라’(menorah)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콜로라도 주 포트 콜린스 대학촌 2년 째 공방
광장 성탄트리 옆에 유대교‘촛대’설치 요청
유대교 성전헌당 기념일인 ‘하누카’(Hanukkah) 기간에도 머노라를 성탄 트리 근처에 갖다놓지 못하게 하자 유대교 신자들이 발끈하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최근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 성탄 트리를 설치할 수 있다 없다 하고 한바탕 시끄러웠던 것을 연상케 한다.
2005년 11월 콜로라도 북부의 유대인 센터의 라비 예라미엘 고렐릭은 올드 타운 광장에 설치된 산타 웍샵 근처에 9피트 높이의 머노라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포트 콜린스 시정부에 요청했었다. 올드 타운 광장은 상점, 화랑, 식당, 술집 등이 즐비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명소이다.
“시정부 소유지에 종교상징물은 안 된다”
“모든 종교단체에서 요청하면 소송 회오리”
이 광장을 소유하고 있는 준 정부기관 다운타운개발국은 라비의 요청을 부분적으로 들어주었다. 일단 머노라 점등식은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라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 곳에 8일 동안 머노라를 설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졸라댔다.
뜻을 관철하지 못한 라비는 이번엔 시정부에 청을 했다. 머노라를 올드 타운 광장 인근 오크 스트릿 플라자에 전시된 성탄 트리 옆에 두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포크 콜린스 시의회는 라비의 요청을 일단 거절했다. 그리고는 이 이슈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 6명으로 구성된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마노라 설치 불허를 재확인했다. 시 정부 소유물에 마노라를 설치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이번엔 다운타운개발국도 하누카 기간 동안이라도 올드 타운 광장에 머노라를 설치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 검사 스티븐 로이는 이 결정이 1989년 펜실베니아의 연방대법판례를 근거로 하고 있어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로이 검사는 “성탄 트리는 세속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머노라는 세속적인 의미와 종교적인 상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게 연방대법원의 판시 근거”라고 설명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상징물 설치를 시 정부가 나서서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백한 소수계 차별, 수정헌법1조 위배”
“커뮤니티 화합 위해 포용적인 자세 필요”
1989년 펜실베니아 재판에 나섰으며 이번에 라비의 변호를 맡고 있는 나단 레윈은 “지난해 시 정부가 올드 타운 광장에 머노라 설치를 불허한 것은 라비와 그의 단체가 갖고 있는, 수정헌법1조에 명시된 권리를 묵살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라비 고렐릭은 “시의회는 부당하다”면서 “성탄절과 성탄 트리는 미국적이라고 하면서 하누카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의회는 “만일 유대교의 장식물설치를 허용할 경우 다른 종교단체들이 줄을 이어 유사한 요청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 시의원은 “이 지구상에는 79개의 종교가 있다. 저마다 상징물 설치를 요청해 올 경우 어느 선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특정 종교의 상징물 설치를 허용하면 다른 종교단체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고 만일 설치를 거부할 경우 당사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혼란을 미연에 막기 위해 머노라 설치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지난해 시의회가 하누카 기간에도 머노라 설치를 불허한 결정을 내렸을 때 포트 콜린스 시장 도우 허친슨은 유일한 소수의견이었다. 그는 위대한 도시는 “포용적이어야 한다”며 시의회의 머노라 설치 불허결정에 실망했다고 했다.
종교간 대화 그룹을 이끄는 필 코스터는 “이 결정은 차별적”이라고 비난했다. 소수계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시의 많은 주민들은 유대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전체 주민 13만7,000명 가운데 유대인이 수천 명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일부 상점들은 매장 유리진열대에 머노라를 올려놓아 자신들의 입장을 소리 없이 전하기도 했다.
머노라 설치를 지지하는 주민들은 시의회가 법조문만 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며 커뮤니티 화합이라는 큰 안목으로 문제를 다시 조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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