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국립도서관, 그녀의 안경 분석 통해 주장-시력저하 유발 백내장의 원인…생활서 접하기 쉬워 당시 흔한 일
▶ 일부 전문가는 “엄청난 비약” 일축, “애디슨 병으로 죽었다” 제기도

41세에 요절한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 <사진 Morgan Library & Museum>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은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매료시켜온 영국의 여류소설가다.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을 썼던 그녀는 단 6편의 소설(‘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엠마’ ‘노댕거 사원’ ‘설득’)을 남겼는데 생전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나 최근 BBC가 영국인들에게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중요한 작가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은 수년전 영화화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제인 오스틴의 명성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오스틴이 41세의 나이로 병에 걸려 요절했다. 1817년 그녀는 집필 도중 병이 크게 악화되자 치료를 위해 윈체스터로 옮겼으나 몇 주 안 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스틴이 죽고 난 후 그녀가 앓았던 병이 무엇인지에 관해 오랫동안 추측이 무성했다.
호르몬 불균형이었다는 설도 있고, 암이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애디슨 병 혹은 오랫동안 살균되지 않은 우유를 마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타계 200주기를 맞은 올해, 영국 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이 최근 내놓은 새로운 연구결과는 그보다 더 극적이다. 병인이 비소 중독(arsenic poisoning)이었다는 것이다.
영국도서관의 연구진은 런던의 검안의사 사이먼 바나드와 함께 오스틴의 것으로 믿어지는 3개의 안경을 조사한 결과 말년에 그녀의 시력이 심각하게 나빠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와 같은 시력 저하는 백내장이 진행됐음을 암시하고 있고, 백내장은 비소중독에서 온 것이라고 연구진은 주장하고 있다.
영국도서관의 보존기록 및 필사본 큐레이터인 닥터 샌드라 투펜은 최근 도서관의 웹사이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만일 오스틴이 백내장을 앓았다면 가장 있음직한 이유는 비소 같은 중금속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된 것”이었을 것이라고 썼다.
3개의 안경이 확실하게 오스틴의 소유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친척 후손들이 갖고 있다가 수년전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오스틴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작은 이동식 책상을 언니 카산드라에게 줬고, 이후 집안에서 물려 내려오다 1999년 이 도서관에 기증됐다. 안경들은 이 책상 속에 보관돼 있었고, 후손들은 오스틴의 것으로 알고 있다.
닥터 투펜은 “그녀가 약한 시력에 관해 언급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기 때문에 오스틴이 분명히 눈에 문제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이 안경들을 보면 확실히 누군가 살해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닥터 투펜의 이 마지막 말은 2011년 출판된 린제이 애쉬포드의 범죄소설 ‘미스 제인 오스틴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두고 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작가는 오스틴의 글과 다른 자료들에서 찾은 단서들을 가지고 그녀가 살해됐을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오스틴이 살았던 시절에 비소는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중금속이었다. 물에도 들어있었고, 약품에도 사용됐으며, 벽지에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비소에 중독되는 일은 그 당시에 ‘아주 흔한’ 일이었다는 것이 닥터 투펜의 설명이다.
원고 필사본을 묶었던 페이퍼 클립으로부터 낙서한 종이들에 이르기까지 오스틴에게 속해있던 모든 물건을 철저하게 정밀검사 하는 일은 오랫동안 학자들에게 숙제와 같은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그 모든 학자들이 비소 중독 주장을 믿는 것은 아니다.
텍사스 대학의 오스틴 전문가인 재닌 바차스 박사는 비소 이론을 ‘엄청난 비약’이라며 금속중독설을 일축했다.
그녀 자신이 오스틴의 처방약에 관해 심층 연구를 진행해온 닥터 바차스는 이 문제에 관한 새로운 연구논문 “안경에 관한 추측들: 제인 오스틴의 안경, 미시즈 베이츠의 안경, 그리고 ‘엠마’에서의 존 손더스”에서 그녀의 의견을 요약했다.
모던 논문학 저널에 실릴 예정인 그녀의 이 연구논문은 공동저자 엘리자베스 피처릿과 함께 쓴 것으로 오스틴의 생애 말년의 건강과 그녀의 소설과 삶, 안경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환경을 추측한 것이다.
닥터 바차스는 오스틴에 관한 다른 프로젝트도 완성한 바 있는데 ‘제인은 무엇을 보았나’(What Jane Saw) 프로젝트는 실제 오스틴이 1813년 관람했던 미술전람회를 그대로 재현한 다음 오스틴의 눈높이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규명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오스틴이 애디슨 병으로 죽었다는 논문을 최근 발표한 영국의 독립 학자인 데어드리 르 페이도 비소 중독설에 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애디슨 병은 부신 활동이 저하되어 부신호르몬 결핍을 유발하는 자가면역 계통 질환으로 70%는 원인이 정밀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오스틴이 약물을 통해 비소를 섭취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영국 국립도서관의 전기적 분석에서 나온 다른 요인들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영국도서관 연구진은 블로그의 포스트에 “오스틴이 썼던 마지막 안경의 도수가 굉장히 높았던 것으로 보아 그녀가 생애 말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실명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오스틴의 서신 콜렉션을 편집한 바 있는 데어드리 르 페이는 오스틴이 죽기 6주전까지 “너무나 멀쩡하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과 전문의들이 렌즈를 분석한 결과, 오스틴은 원시였다. 독서, 글쓰기, 수놓기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안경은 또 저마다 도수가 달랐다. 오스틴의 시력이 해가 갈수록 나빠지면서 도수를 높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오스틴이 말년에 시력으로 고생했다는 것은 그녀의 자필 편지에도 나타나 있지만, 시력악화를 초래한 건강 문제는 규명되지 않았다. 당뇨병일 가능성도 있지만, 당시 당뇨병은 안경도수를 서서히 높일 수 있는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치명적이어서 가능성이 적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르 페이는 “오스틴은 굉장히 조용한 삶을 살았다”고 전하고 “사람들이 뭔가 흥분된 요소를 찾고 싶어하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문제는 오스틴이 너무나 평범하고 조용한 라이프를 유지했기 때문에 별다른 드라마가 없다는 점”이라면서 “사람들은 원하는 걸 찾지 못하면 드라마를 창조해내기 시작한다”면서 이번 비소 중독설을 일축했다.
영국 국립도서관은 지난주부터 제인 오스틴의 안경들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
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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