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사람들 주의력 빼앗고 분노의 감정 유발 양자 간 직접 수다보다 훨씬 시끄럽게 느껴져
■ 신경 거슬리는 ‘반쪽짜리 대화’
현대인은 심각한 소음공해에 노출되어 있다. 사람 자체가 소음을 몰고 다니는 존재이다 보니 하루 중 단 한순간도 완전한 정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리의 소음은 데시벨이 대단히 높다. 오가는 자동차 소리,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소리,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냉난방기 소음, 구급차량의 요란스럽고 다급한 경적, 신축건물 공사판의 육중한 중장비 기계음 등 온갖 생활 소음이 뒤죽박죽 뒤섞여 완벽한 불협화음을 이루면서 귀를 피곤하게 만든다. 태고의 침묵이 지배하는 사막에서 몇 달간 생활한 사람이 속세로 돌아왔을 때 가장 못견뎌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음이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귀가 너무 아프다”고 푸념한다.
소음공해는 이동통신 수단인 셀폰의 등장으로 공간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제는 어디를 가건 셀폰의 성가신 소음을 피하기 힘들다. 특히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셀폰 사용자들의 ‘반쪽자리 대화’를 듣게 된다.
신기하게도 셀폰 대화는 유난히 귀에 거슬린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보다 훨씬 더 신경이 쓰이고 성가시다. 한마디로 짜증을 부르는 소음이다.
이건 그저 느낌만 그런 게 아니다. 과학자들은 최근 실험을 통해 셀폰 대화가 지척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보다 훨씬 방해가 되고 성가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를 추가했다.
지난주 플러스원(PLoS One)에 게재된 보고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험에 참여한 두 그룹의 대학생들에게는 한 단어의 철자를 재배합해 완전한 의미를 지닌 새로운 단어를 만들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예를 들어 angel이라는 단어의 다섯 개 철자를 새로 배합해 glean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내는 식이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학생들이 철자 재조합을 하는 동안 연구진이 내세운 훼방꾼은 이들의 옆에서 셀폰을 귀에 대고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또 다른 그룹의 학생들은 작업수행 중 두 사람의 훼방꾼이 나누는 대화에 끊임없이 노출됐다.
그 결과 셀폰 대화에 노출된 학생들이 두 사람 사이의 면담에 노출된 동료들에 비해 자신들이 들은 내용을 훨씬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어진 작업을 하는 동안 셀폰 대화 내용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양자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직접 대화보다 한쪽 화자만 떠드는 셀폰 대화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더 심하게 교란시킨다는 결론이다.
셀폰 대화 내용은 반쪽짜리다. ‘청중’은 두 사람 가운데 지금 곁에 있는 화자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게 된다.
당연히 쌍방의 대화를 하릴없이 엿듣는 쪽이 어느 한 편의 일방적인 말만을 들을 수밖에 없는 쪽보다 내용파악을 제대로 잘할 것이고, 따라서 대화 내용도 더 잘 기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게 흥미롭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불특정 다수가 노출되는 셀폰 대화의 일방성은 해프어로그(halfalogue)라는 새로운 조어를 탄생시켰다. 반쪽이라는 뜻의 해프와 half와 대화라는 의미의 dialogue를 결합시킨 유행어다.
요즘에는 장소를 불문하고 이처럼 해프어로그에 열중하는 남녀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현장에 없는 상대를 향해 혼잣말을 해대는 해프어로그는 이동통신 수단의 광범위한 보급이 낳은 현상이지만 여기에 노출된 주변인의 인지기능은 이로 말미암아 하이재킹을 당하게 된다. 주의를 빼앗긴다는 뜻이다.
대화는 상대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상대와 나누는 셀폰 대화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나머지 반쪽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추론하게 만든다.
지금 옆에 있는 한쪽 화자의 말을 바탕으로 상대가 어떤 대답을, 혹은 질문을 했을 것인지 알아내려 든다.
인간의 뇌는 논리적 공백을 채우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셀폰 대화 내용에 자신도 모르게 신경을 기울이게 된다. 의식의 방해가 나타나는 셈이다.
샌디에고 대학 심리학 조교수인 베로니카 갤빈의 설명에 따르면 자의에 관계없이 해프어로그에 사로잡힌 사람의 가슴속에는 좀처럼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릴 때 느끼는 것과 거의 동일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예컨대 버스를 타고 갈 때 바로 뒤에서 누군가 셀폰에 대고 떠들고 있다면 싫건 좋건 대화 내용을 쫒아가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불가피성 때문에 심리적 스트레스 반응이 나오게 된다. 귀에 들리는 옆 사람의 일방적 셀폰 대화는 라디오 끄듯 꺼버리거나 차단할 도리가 없다.
뉴욕 로체스터 대학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인 로렌 엠버슨의 지적대로 새롭거나 예상치 못한 자극에 집중하려드는 뇌가 논리적 흐름에 공백을 지닌 해프어로그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프어로그는 현장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쌍방대화에 비해 주변사람에게 훨씬 크게 느껴진다. 동일한 소음수준이라 해도 해프어로그 쪽이 더 시끄럽게 들린다.
정상적인 쌍방대화에는 신경을 끌 수 있지만 해프어로그는 그게 잘 안 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엠버슨은 64명의 열차 통근자들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한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참여자들은 두 가지 소음에 노출됐다. 하나는 셀폰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면담이다. 이들을 반복적으로 여러 수위의 양쪽 소음에 노출시킨 후 그들이 시끄럽다고 느끼는 순으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이들의 매긴 점수의 평균을 내본 결과 동일한 수준의 소음 레벨에서도 실험 참가자들은 셀폰 대화 쪽이 훨씬 시끄럽다는 견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셀폰 소음은 폐쇄된 공간에서 도무지 피해갈 도리가 없고 주변 사람의 주의를 빼앗아 의식의 훼방을 일으키며 이로 인해 더욱 시끄럽게 느껴진다는 점 때문에 신경을 발화점으로 끌어올리는 감정적 공해에 해당한다.
실험에 참여한 열차 통근자 가운데 한 명은 “가끔 양키스 팬들이 술에 거나하게 취해 차안에서 큰 소리를 떠들곤 하지만 옆 좌석 여성이 30분간 남자 친구에게 불평을 토해내거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상사에게 아부하는 직장인의 해프어로그를 듣는 것만큼 시끄럽거나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술 취한 야구광들의 소란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뇌의 인지기능을 자극해 신경줄을 건드리며 감정을 비등하게 만드는 반쪽짜리 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