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coup d’etat)는 프랑스 말로 ‘국가 때리기’란 뜻이다. 힘에 의한 정부 전복은 줄리어스 시저이래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지만 왜 유독 프랑스어가 이에 관한 한 만국 공용어가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근대사 최대 정치적 사건인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 나폴레옹이 탄생했고 나폴레옹의 집권을 가능케 한 것이 쿠데타였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1799년 11월9일(당시 혁명력으로는 무월(Brumaire) 18일) 서른 살이던 나폴레옹 장군은 집정부를 뒤집어엎고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집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은 이를 환영했으며 그 후 1815년 워털루에서 패배할 때까지 나폴레옹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지배자로 대륙을 호령했다.
쿠데타는 군부가 권력을 잡기 위해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집권자가 이미 가진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일으키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1852년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일으킨 궁정 쿠데타다. 이 사건을 두고 마르크스가 쓴 ‘루이 보나파르트의 무월 18일’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한 고전으로 꼽힌다. 여기서 그는 “헤겔은 모든 역사적 사건은 두번 일어난다고 말했으나 한가지 빠뜨린 게 있다. 첫 번째는 비극이지만 두 번째는 엉터리 희극이라는 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는 나라는 대체로 국민들의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고 정치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곳이다. 이런 때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쓰던 영웅이 나타나 국가적 난제를 풀어주기를 희망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세 번 쿠데타를 경험했다.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원조 쿠데타, 1972년 10월 유신이란 이름으로 다시 박정희가 일으킨 궁정 쿠데타, 그리고 1979년 전두환이 일으킨 유혈 쿠데타가 그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무력으로 집권한 사람들이 올바른 경제 정책을 펴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성공했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꼭 나라를 바로 이끈다는 보장은 없다. 출발 직후부터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들어 오히려 정정 불안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볼리비아는 지금까지 200회에 걸친 쿠데타가 발생했지만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도 세계 최빈국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해 국가 발전에 성공한 사례는 칠레가 거의 유일한 경우다. 지난 20여년간 이 곳에서 쿠데타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것도 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동남아 IMF 위기의 근원지였던 태국에서 19일 쿠데타가 발생, 외유 중이던 탁신 총리가 쫓겨났다. 이 나라도 지난 74년간 23차례 쿠데타가 일어난 것을 보면 볼리비아만은 못하지만 어지간한 나라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4%가 이를 지지하고 국왕도 이를 승인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집권 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있나’라는 논쟁이 일었지만 거기서는 ‘국민이 지지하는 쿠데타는 처벌할 수 있나’ 하는 문제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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