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다섯번의 실패, 결국엔 공신력 문제”
지난해 3월 워싱턴 한인커뮤니티센터 준비위가 돼지 저금통을 각 한인업소에 배치한다며 기금모금 운동에 한인들의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
<순서>
1 커뮤니티 센터 왜 필요한가?
→2 건립 추진 역사와 실패 이유
3 센터 건립 성공으로 가는 길
4 준비위의 현황과 비전
5 워싱턴 총영사,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회 의장 인터뷰
6 한인사회 지도자 좌담회
초반에 열정 넘치다 채 2년을 못넘기고 흐지부지
주도권 다툼 일삼으며 동포들 호응 있으리란 착각
한인사회 전체 대표 못한‘일부’인사 주도가 문제
<건립 운동의 역사>
워싱턴 한인들의 문화, 교육의 허브역할을 할 커뮤니티 센터 건립운동은 지난 20년간 워싱턴 지역에서 줄기차게 있어왔다.
1996년 박용찬 미주방송 사장의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시작돼 2000년대 들어 재외한민족센터(대표 이정우), 2006년 커뮤니티 센터 건립추진위(위원장 최병근), 2010년 조지메이슨대 내의 코리안센터(대표 노영찬), 그리고 2012년 1.5세 중심의 커뮤니티 센터 건립 준비위원회(위원장 레이 박) 등 도합 다섯 차례 건립운동이 추진됐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현재의 건립 캠페인은 여섯 번째이다.
미주방송 코리안커뮤니티센터
건립운동은 1996년 처음 시작됐다. 박용찬 미주방송 사장은 워싱턴에선 처음으로 코리안 커뮤니티 센터 건립추진본부를 결성, 6만4천여달러를 모금했다. 조직도 박용찬 사장을 이사장으로 한 20명의 이사회, 자문위원회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지지부진하다 중단된 상태다. 2006년 박용찬 사장에 의하면 약 7만2천 달러의 기금이 은행에 예치돼 있다 한다.
재외한민족센터
98년부터는 이정우 대표를 중심으로 재외한민족센터 건립 운동도 전개됐다. 98년 건스턴코이노니아센터로 출발할 당시부터 센터 건립을 목적으로 로턴에 15에이커의 대지를 구입해놓은 상태였다. 약 5백만-1천만달러의 재원은 한국 정부의 지원금, 미 정부의 그랜트, 한인사회의 모금 등으로 충당해 해외 한민족을 아우르는 센터를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에 건립하겠다는 의욕에 넘쳤지만 역시 공염불로 끝났다.
한인커뮤니티센터 건립재단
2000년대 중반 들어 문흥택 한미교육재단 이사장이 주도한 워싱턴 코리안 커뮤니티센터 건립운동이 기대를 모았으나 이 논의에 참가한 일부 단체장들의 이견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다 김영근 당시 한인연합회장 등 일부 인사들이 2006년 이도영 이사장, 최병근 부이사장을 주축으로 한 한인커뮤니티 센터(KACC) 건립재단을 별도로 구성해 캠페인에 나섰다. 이들은 최대 1천5백만 달러 규모의 건립 계획안을 발표하고 모금활동에 들어갔으며 23만 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성과를 내지 못하고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조지메이슨대 코리아 센터
2010년에는 노영찬 조지 메이슨 대 교수가 이 대학 내에 ‘코리아 센터’(가칭) 건립을 위한 청사진을 발표하고 모금운동에 돌입했다. 대학 측에서는 한인사회가 2년 내 코리아센터를 건립할 계획이 있으면 무상으로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뜻을 밝혀 기대를 모았다. 200만 달러 정도가 예상되는 센터 건립비는 워싱턴 한인사회의 모금액과 한국 정부의 지원금으로 충당될 전망이었지만 전혀 앞걸음을 떼지 못했다.
코리안 커뮤니티센터 건립위원회
이번에는 1.5세들이 주축이 돼 나섰다. 레이 박 씨를 주축으로 2012년 워싱턴 코리안 커뮤니티 센터(KCCW)가 창립 모임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KCCW는 한인사회에서 성금을 모으고, 기업과 단체 등으로부터도 지원을 받아 총규모 1,0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 커뮤니티 센터를 세운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어 약 5만 달러의 기금 약정을 받았다고 발표했으나 캠페인은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워싱턴 한인커뮤니티센터 준비위원회
2013년 워싱턴 한인사회에서 한인커뮤니티센터 건립을 위해 기금을 모았거나 관심을 가졌던 단체들이 모여 건립운동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새론 불로바 수퍼바이저회 의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적극 후원하며 꾸준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각오다.
<역대 건립운동 왜 실패했나>
모두 다섯 차례의 건립 운동은 초반에는 기세를 올렸으나 대부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처럼 훌륭한 취지로 출발했던 여러 프로젝트가 진전을 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한인 커뮤니티의 동의와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한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공신력 확보에 실패한 것이 주요 패인으로 분석된다.
박용찬 사장의 건립운동은 한인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된 대표성 문제에 시달렸다. 공신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모금운동도 지지부진하다 결국 수면 하로 접어들었다.
재외한민족센터 건립운동은 지나친 목표설정과 한국 정부에 의존한 모금계획 등이 발목을 잡은 데다 한인사회의 참여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한인커뮤니티센터 건립재단도 의욕적으로 출발해 체계적인 조직과 모금 청사진을 발표했으나 발족 논의과정에서 다른 한인단체들이 이탈하는 등 한인사회 전체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지메이슨대 코리아 센터 역시 청사진은 보랏빛이었으나 빈약한 조직과 참여단체 등 한인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코리안 커뮤니티센터 건립위원회도 1.5세들이 주축이 돼 열의를 갖고 출발했으나 오래 누적된 실패의 경험을 떨치지 못하고 동포사회의 열기를 지피지 못함으로써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워싱턴 한인커뮤니티센터 준비위원회도 초반에 다양한 참여인사들의 주도권 싸움에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겨우 조직을 정비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범 동포사회 참여란 핵심적인 요인 외에도 몇 가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두 번째로는 추진 주체들의 ‘오산’을 들 수 있다. 좋은 취지의 깃발만 내걸고 열정만 뒷받침 되면 동포들이 마냥 따라올 것이란 ‘순진한’ 생각들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세 번째는 헤게모니 싸움이었다. 커뮤니티 센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건립조직이 동포사회의 헤게모니 싸움장으로 변질됐다. 그래서 누가 나서면 반대쪽에서는 다리를 걸었다. ‘일부’ 인사들이 주도한 단체의 캠페인에 동포사회의 호응은 미지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지난 20년의 실패의 역사와 경험은 쓰라린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한인 커뮤니티 건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며 추진 주체에 대한 신뢰가 동포사회 호응의 결정적 키포인트라는 사실이다. 한인사회의 대표성을 갖는 조직의 건설 문제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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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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