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몽 시달리는 20% 환자는 어린 시절 성폭행 경험 등 과거의 트라우마 되살아나 고해성사 후 생 마치기도 케이스 따라 항우울제 처방
▶ ■ 호스피스 병동의 말기 환자 인터뷰했더니…
늦가을의 어느 저녁 루시안 메이저스(84)는 부엌 식탁에 앉아서 아내 잰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근에 꾼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말기 방광암에 신장부전을 앓고 있는 메이저스는 ‘호스피스 버팔로’의 의사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꿈에서 그는 친한 친구 칼멘과 함께 자기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틴에이저인 세 아들은 뒷자리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우린 클린턴 길을 따라 운전하고 있었지” 메이저스는 물기 어린 푸른 눈을 크게 뜨며 신이 나서 그 여행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그랜드캐년이 얼마나 거대하고 멋진 곳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바로 클린턴 길의 끝에 그랜드캐년이 있었지 뭐야!” 메이저스는 친구 칼멘을 20년 넘게 만난 적이 없고, 그의 아들들은 지금 모두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다.
“아이들이 왜 차에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호스피스 버팔로의 닥터 크리스토퍼 W. 커가 물었다. 그는 말기환자 간병의사로서 인생의 마지막에 이른 환자들이 꾸는 꿈과 환영의 치료적 역할을 연구하고 있었다.
“나의 아들들은 내 인생이 성취한 가장 큰 업적이요” 메이어스가 말했다. 그는 이 꿈을 꾼 지 3주 후에 죽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꿈과 환영은 수천년 동안 여러 문화권을 매혹시켜온 관심사다. 인류학자, 신학자, 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임종 현상에 대해 연구해왔다. 중세 필사본과 르네상스 회화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소설, 특히 디킨스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장면은 ‘시민 케인’이 죽으면서 내뱉는 알 수 없는 한마디 ‘로즈버드!’다.
현대 의학계에서 심리학자, 소셜워커, 간호사들은 그러한 경험에 주목하지만 의사들은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많은 경우 환자들 자신이 비웃음을 당할까봐 이런 경험을 말하지 않기도 한다.
호스피스 버팔로의 닥터 커가 이끄는 임상연구 팀은 이러한 경험들을 해석하고 그 역할을 이해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것이 환자에게나 유족에게나 ‘좋은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뉴욕 칙토와가에 위치한 호스피스 버팔로는 일년에 5,000명의 환자를 집이나 요양시설을 방문하여 돌보고 있다. 의사, 간호사, 소셜워커, 성직자들은 환자에게 “잠을 잘 잤나요?”라고 묻지만, 이들은 바로 뒤이어 “생각나는 꿈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사람들이 천천히 내 옆을 지나 걸어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아주 친절하게 내 팔과 손을 만지며 지나갔다. 반대 쪽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엄마와 아빠가 있었고, 삼촌도 있었다. 내가 아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는데, 나의남편과 나의 개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그들도 보게되리라는 걸 알았다”(진 파버·75,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수개월 전의 꿈)
말기간병의학지에 실린 저널을 위해 연구팀은 호스피스 버팔로에 급성치료 차 입원한 59명의 말기환자들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내다보이는 이 시설에 들어온 거의 모든 환자는 꿈을 꿨거나 환영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대다수는 자신의 꿈을 편안한 것으로 묘사했다. 5명 중 한명 정도는 고통스러운 꿈을, 나머지는 보통이었다고 말했다.
꿈속에서 환자들은 그들이 좋은 부모였고, 자녀였고, 일꾼이었음을 재확인한다. 그들은 여행 떠날 준비를 하며 박스를 싸고, 메이저스처럼 좋은 벗을 가이드 삼아 여행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던 환자들도 이런 꿈은 절대 잊지 못한다.
76세의 환자는 자기가 어릴 때 죽은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향수 냄새를 맡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한 여성노인은 보이지 않는 영아를 안고 침대에 누워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연구팀에게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그들 부부가 사산한 첫 아기다.
54세의 여성은 죽기 9일 전에 수십년 전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던 친구의 꿈을 꾸었다. 노인이 되어 나타난 그 친구는 “미안해, 너는 좋은 사람이었어”라며 “도움이 필요하면 내 이름을 불러”라고 말했다.
이런 연구는 환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동안 외롭지 않고, 괴로웠던 과거에서 놓여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말기 환자들에게 필요한 건 의학적으로 며칠의 시간을 더 연장해주는 것보다 마음의 평안을 갖고 죽음을 맞도록 해주는 것이라는 견해다.
호스피스 시설에 들어온 말기환자들은 85%가 섬망증(delirium)을 겪는다. 고열이나 뇌전이, 혹은 신체화학적 변화로 인해 인지상태가 바뀌는 것이다. 이런 환자는 깨어있는지, 꿈을 꾸는 것인지, 환영을 보는 것인지, 일관성 있는 묘사를 하지 못한다. 죽은 친척이나 친구가 방 한구석에 서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연구팀은 환자가 보는 환영이 의미 있는 것인지, 환자에게 위안을 주는지, 고통을 주는지, 환자가 간병인이나 가족과 나누고 싶어하는지 아닌지를 연구하고 있다. 어떤 가족은 “우리 어머니가 환각상태에서 빠져 죽은 사람을 본다고 하니 제발 정신을 차리도록 해달라”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가족에게 섬망증을 잘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가족이 임종 침대에서 더 멀어질지 가까워질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말기환자의 20% 정도는 고통스러운 꿈으로 괴로워한다. 과거에 겪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 때문인데 어떤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한 후 떠나고,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부모가 말기침상에서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면 자녀들은 크게 놀라기 마련인데 이때 편안한 임종을 유도하기 위해 항정신병약을 쓸 것인지는 간병팀과 가족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한 여성환자는 악몽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가족을 인터뷰한 결과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알게된 후 연구팀은 항우울제를 처방했고 환자는 신부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전직 경찰이었던 폐암 말기환자는 자신을 돌보던 간호사를 붙들고 고해성사를 했다. 자신이 일선복무 시절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고, 아내 몰래 부정한 관계를 맺었으며, 자녀들과도 사이가 나빠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언제나 악몽이었다. 칼에 찔리고, 총에 맞고, 가위에 눌리기도 했으며, 아내에게 용서를 빌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당신이 나를 아프게 했다’고 책망하는 꿈을 계속 꾸었다.
이런 사람들은 의사들이 도울 수가 없다. 말기환자 간병연구들은 이런 환자들에게 상처를 열고 풀어놓아 심리학자나 성직자의 도움을 받아 평안한 죽음을 맞도록 돕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죽는 당사자뿐 아니라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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