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를 택해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늘어나는 추세다. 덴버의 한 공원에서 예비부부가 눈을 맞아가며 야외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비수기를 골라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적지 않다.
이중에는 푹푹 찌는 8월의 무더위에 플로리다에서, 혹은 칼바람과 눈폭풍이 몰아치는 1월 메인에서 식을 올리겠다며 청첩장을 보내는 무례한 예비신혼부부들도 포함된다.
그런가하면 눈으로 뒤덮인 버몬트 산 정상에서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스키화를 신고 가파른 슬로프를 따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퇴장하는 별난 결혼식도 있다.
온몸을 난타하는 한겨울 찬바람에 얼굴이 시퍼렇게 얼어붙은 한겨울 야외 결혼식장의 하객들은 의례적인 덕담을 나눈 뒤 푸짐한 욕설을 담은 입김을 허공중에 한가득 뿜어낸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는 선택하기 힘든 ‘비수기 결혼’(offseason wedding)이 팍팍한 혼례예산에 가위눌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유행을 타고 있다.
예절상담 전문업체인 ‘프로토콜 스쿨 오브 텍사스’의 창업주이자 에티켓 전문가인 다이앤 고츠만은 “고무줄처럼 예산을 늘릴 수 없다면 비수기를 이용해 유명장소에서 저렴한 할인가격에 예식을 올리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제 아무리 인기 있는 명승지라도 인적이 끊긴 비수기의 분위기가 스산하기 마련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현지의 날씨다.
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것도 전혀 이상적이지 못한 날짜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라면 초청을 받은 하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의반 타의반’ 불참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츠만은 “경비를 고려하는 것도 좋지만 하객들을 배려해 지나치게 불편한 장소나 날짜는 피하는 것이 좋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조차 불참통고를 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프시즌 웨딩의 경우 사전 계획에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 고츠만은 악천후에 대비해 플랜 A, 플랜 B에 플랜 C까지 마련해 두어야 예정대로 예식을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프시즌에 날씨가 나쁘기로 악명이 높은 장소를 택했다면 예식뿐 아니라 하객들이 할 수 있는 여가활동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샌디에고에서 간호사(RN)으로 일하는 제인 피터슨은 지난해 허리케인 시즌에 남편과 함께 도미니카 공화국의 푼타 카나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다.
행사지에 도착하자마자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가 들이닥쳤고,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오는 통에 피터슨 부부는 바닷가 호텔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푼타 카나는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세계적 휴양지이지만 허리케인 시즌과 맞물리는 비수기의 풍경은 스산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했다.
사실 피터슨 부부에겐 날씨보다 더 큰 이슈가 있었다. 바로 집에 남겨 두고 온 두 딸이었다.
피터슨 부부철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결혼식장소로 여행을 해야 하는 기혼 커플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교통편도 알아보아야 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줄 사람도 구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가게 된다.
피터슨은 “결혼식이 끝난 후 신랑과 신부는 푼타 카나에 남아 신혼여행을 대신했지만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싸 머나먼 길을 되짚어 가야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칼럼리스트인 제니퍼 매카더는 어릴적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우기에 코스타리카의 노사라로 여행을 떠났다가 혼쭐이 났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우기를 맞아 거의 매일 쏟아지는 장대비는 노아의 방주라도 침수시킬 정도로 대단했다. 나무들이 쓰러지고 도로가 물에 잠겼으며 짧은 하객명단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시간에 맞춰 식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한 여성 하객은 코스타리카의 산호제에서 홍수로 발이 묶였다. 다급해진 그녀는 택시기사에게 평상시에 비해 두배나 되는 대절료를 제시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 한 커플은 SUV를 렌트해 식장으로 향했으나 차바퀴가 진흙수렁에 빠지는 바람에 길 위에서 밤을 지냈다. 자동차 안으로 물이 들어와 매트가 놓인 바닥에 고이는 바람에 부부는 다리를 대시보드 위에 올려놓은 자세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가까스로 식장에 도착한 부부는 장화를 신고 헤드램프가 달린 모자를 쓴 채 물에 잠긴 도로가에 서있는 신랑신부를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날렸다. 예비커플은 “이런 날씨에 운전을 하고 오는 정신 나간 하객이 정말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초청을 받은 하객 입장에서 비수기 결혼식보다 더 끔찍한 것이 홀리데이 연휴에 올리는 예식이다.
맨해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카일라 도이치는 “친구의 청첩장을 받아든 후 기분이 꿀꿀해진 것은 행사장인 세인트 루이스의 추운 날씨 탓이 아니라 신년전야라는 결혼식 타이밍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의 비수기 결혼으로 크리스마스와 신년 첫날을 남친과 함께 멕시코에서 보내려던 그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대신 그들은 대형 홍수피해가 발생한 세인트루이스에서 매섭게 찬바람을 견뎌가며 친구의 결혼식을 지켜보아야 했다.
리셉션도 지루했다. 밴드는 밤 10시까지 연주를 시작하지 않았다. 신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될 때까지 밴드를 잡아두려는 ‘주최측의 사주’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막상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을 때 하객들은 이미 취한 상태였고, 결국 리셉션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그렇다고 모든 오프시즌 결혼식이 하객들에게 늘 재앙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두고두고 기억될 마법같은 순간도 적지 않다.
조지아주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이벤트 기획전문가 레베카 가드너는 결혼식 계획을 세울 때 기본을 잊어선 안된다고 충고한다.
그녀는 “비수기건 아니건 간에 결혼식은 궁극적으로 파티”라며 “술과 아름다운 조명, 흘륭한 음악을 갖춘다면 어떤 환경에서건 예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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