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주니어’ 규현·‘소녀시대’ 서현 안정적 가창력
▶ 지오·임시완도 연기력 인정받으며 블루칩 급부상
뮤지컬‘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공연날인 1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소녀시대’ 서현이 주인공‘스칼렛’을 맡았다. 객석 뒤편에서 젊은 커플이“서현 생각보다 잘하는데”“정말, 그러네”라고 속삭인다. 서현은 지난해 초‘해를 품은 달’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당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년 만에 무대 위에서 만난 그녀는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노래 호흡이 달리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안정됐다. 역시 소녀시대 보컬라인 다웠다. 가요창법이 아닌 좀 더 클래시컬한 창법을 들려주려고 애쓰는 노력이 엿보였다. 무엇보다 연기력과 표현력이 좋았다. 철부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변하는 스칼렛에 서현은 제격이었다.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는 더는 뮤지컬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슈퍼주니어’ 규현과‘비스트’의 양요섭 역시 공연 중인 뮤지컬‘로빈훗’에서 필립 왕세자 역을 맡아 호평을 받는 중이다.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 역사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ES’ 출신 바다가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 신호탄을 쐈다. 2003년 ‘페퍼민트’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이후 ‘핑클’ 출신 옥주현이 2005년 ‘아이다’로 진출하면서 1세대 뮤지컬 아이돌이 완성됐다. 이들은 가요계에서 이미 증명된 가창력을 기반 삼아 연착륙했다. 2008년 ‘온에어 시즌2’로 뮤지컬에 데뷔한 ‘클릭비’ 오종혁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이후 한동안 뜸하다가 2010년 ‘JYJ’ 김준수가 ‘모차르트!’로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2·3세대 아이돌 뮤지컬 시대가 열렸다. ‘슈퍼주니어’ 규현·려욱·성민을 비롯해 ‘샤이니’ 키와 온유, ‘2PM’의 준케이, ‘2AM’ 창민과 조권, ‘천상지희’ 다나와 린아 등이 중심축을 이뤘다.
‘비스트’ 장현승, ‘인피니트’ 성규와 우현, ‘B1A4’ 산들, ‘원더걸스’ 예은, ‘에이핑크’ 정은지, ‘FT아일랜드’ 이재진,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박형식, ‘f(x)’ 루나 등도 가세했다.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소녀시대’의 태연·티파니·제시카·써니도 뮤지컬에 등장했다.
이 중 김준수가 조승우 천하에 도전장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삼총사’를 시작으로 여러 뮤지컬에 출연하며 점차 뮤지컬배우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규현도 블루칩이다. 려욱, 창민, 다나, 린아 등도 점차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있는 서현은 4세대 뮤지컬 아이돌로 분류할 수 있다. 시기상으로 구분하면 2014년 이후. 작년 서편제로 국내 뮤지컬에 데뷔한 ‘엠블랙’ 지오(2012년 일본에서 ‘광화문연가’ 출연)와 역시 지난해 ‘풀하우스’로 뮤지컬에 첫발을 들인 뒤 이달 말 ‘드림걸즈’에 출연 예정인 ‘베스티’ 유지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2·3세대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이들은 뮤지컬 무대에 준비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규현·려욱 등 뮤지컬 여러 편에서 다져진 2·3세대 역시 4세대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이돌들은 어릴 때부터 노래, 춤, 연기 등의 트레이닝을 받아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몇 년이 지나면서 이제 적응하는 단계"라고 봤다.
공연전문잡지 씬플레이빌의 김아형 기자도 “앞서 여러 아이돌이 시행착오를 겪어서인지 뮤지컬에 새롭게 등장하는 아이돌들은 준비가 잘 돼 있다"고 했다. 특히 서현을 지목하며 “뮤지컬배우로서 성장 가능성을 봤다. 성악 발성에 대해서도 꾸준히 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현은 소녀시대의 해외 투어 때도 개인시간이 날 때마다 뮤지컬을 관람한다. 특히 ‘위키드’는 스무번 이상 봤다. 이 뮤지컬의 ‘글린다’ 역을 욕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현처럼 최근 뮤지컬계에 발을 들인 아이돌은 뮤지컬 장르 자체에 관심이 많다. 예전에는 생명력이 짧은 아이돌들이 살길을 모색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여겨졌다. 김아형 기자는 “요즘은 아이돌 중 데뷔 초부터 뮤지컬을 주특기로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무조건 주인공을 맡으려 하기보다 비중이 작더라도 자신의 색깔에 맞는 캐릭터를 고르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프리실라’에서 트러블 메이커인 ‘아담’ 역을 맡았던 조권이 대표적이다. 규현 역시 ‘로빈훗’에서 자신의 평소 이미지와 맞는 순진무구한 필립 왕세자 역을 맡았다. 려욱은 ‘여신님이 보고 계셔’ ‘아가사’ 등 규모는 작지만 알찬 작품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서현·규현·려욱 등 뮤지컬에서 대거 활약하는 아이돌을 보유 중인 SM엔터테인먼트의 김은아 홍보실장은 “노래·춤·연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본인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뮤지컬에서 성취감을 많이 느낀다"고 알렸다.
뮤지컬에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듯한 인상도 줄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돌이 연습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아 프로덕션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볼멘소리가 업계에 많았다. 최근에는 다르다. 아이돌 사이에서 뮤지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다른 스케줄보다 중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 이후에도 팀 활동을 하면서 단체 문화에 익숙해 뮤지컬배우들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는 점도 크다.
김은아 실장은 “아이돌들이 프로다운 모습과 책임감을 보여주면서 조금씩 업계에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면서 "본인이 원하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원종원 교수는 "무대 예술은 서로의 약속"이라면서 "현장의 예술인 만큼 조화가 중요하다. 시간을 온전히 작품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무대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기회로 본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작품이 전체적인 질도 높아지고 아이돌에 대한 믿음도 더 강화될 것"이라고 짚었다.
◇아이돌 출신 대표적인 뮤지컬스타
▲옥주현: 안정된 가창력과 표현력이 강점. 차근차근 작품목록을 채우며 뮤지컬계 톱배우로 떠올랐다. ‘아이다’(2005), ‘시카고’(2008) ‘캣츠’(2008) ‘브로드웨이 42번가’(2009) ‘몬테크리스토’(2010) ‘아가씨와 건달들’(2011) ‘엘리자벳’(2012) ‘황태자 루돌프’(2012) ‘레베카’(2013) ‘위키드’(2013)
▲바다: 시원스런 가창력과 적극적인 자세가 돋보인다. 페퍼민트(2003) ‘텔미 온어 선데이’(2007) ‘노트르담 드 파리’(2008) ‘미녀는 괴로워’(2008) ‘브로드웨이42번가’(2010) ‘금발이 너무해’(2010) ‘미녀는 괴로워’(2011) ‘스칼렛 핌퍼넬’(2013) ‘카르멘’(201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5)
▲김준수: 뮤지컬계 독보적인 스타인 조승우와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아이돌 스타. 특히 판타지와 송스루 뮤지컬에서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모차르트!’(2010) ‘천국의 눈물’(2011) ‘엘리자벳’(2012) ‘디셈버 : 끝나지 않은 노래’(2013) ‘드라큘라’(2014)
◇차세대 뮤지컬스타, 이들을 주목하라
▲규현: 이미 입지를 굳혔지만,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맑은 목소리와 안정된 가창력이 인상적이다. 초반에 약점으로 지적됐던 연기력이 보강되면서 급부상하고 있다. 뮤지컬에 관심이 많아 바쁜 스케줄에도 꾸준히 경력을 쌓아온 것이 강점. ‘삼총사’(2010), ‘캐치 미 이프 유 캔’(2012), ‘해를 품은 달’(201) ‘그날들’(2014) ‘로빈훗’(2015)
▲서현: 혹평을 받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발굴한 진주. 길게 이어지는 넘버 막판에 호흡이 달리기는 하나 안정된 가창력을 선보인다. 특히 표현력과 고전미를 갖춘 외모가 발군. “문화 구매력 있는 30~40대 남성 관객을 뮤지컬 시장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배우"(김아형 기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해를 품은 달’(201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5)
▲지오: 국내 내로라하는 연출가 이지나의 총애를 받는 배우. “연기력이 안정됐다"(원종원 교수)는 평을 받고 있음.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서편제’(2014) ‘바람의 나라, 무휼’(2014)
▲임시완: 2013년 ‘요셉 어메이징’으로 뮤지컬 데뷔 당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변호인’(2013), 드라마 ‘미생’(2014)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뮤지컬계에서도 단숨에 블루칩으로 급부상. 최근 뮤지컬계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지에 맞는 캐스팅과 가창력만 다듬으면 가능성(김아형 기자)이 있다. ‘요셉 어메이징’(2013)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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