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용시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유럽과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나와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신문은 유럽 국가들이 지난 수년간 골머리를 앓아왔던 높은 수준의 장기 실업률과 청소년 실업, 그리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아왔던 제반 문제점들이 미국시장에서도 일부나마 똑같이 표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난 지 2년 이상 지났지만 실업률은 9% 선으로 여전히 높다. 특히 학위가 없는 청년들의 실업률은 두자릿수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6개월 이상 장기 실직상태에 있는 미국인들도 거의 6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최근의 경기침체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악화됐을 개연성도 있지만 침체 자체가 이런 문제점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 문제가 불과 얼마 전 불거진 게 아니라 10년 이상 잠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고용시장은 모든 면에서 유럽보다 견실한 구조로 되어 있어 여건이 아무리 악화하더라도 유럽만큼 취약하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채무 부담이 점증하는 상황이기때문에 이런 현상은 우려를 더하고 있다.

미국 고용문제는 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상당수 경제전문가는 유럽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이 경직성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엄격한 법률로 인해 기업들이 고용을 한층 꺼리고 수많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근로 동기마저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노동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구조인 것으로 평가된다.

경기가 둔화되면 기업은 언제든 직원들을 해고할 수 있고 반대로 사업이 잘되면 한층 신속히 직원들을 채용할 수 있는 구조다.

근로자들도 언제든 업종을 바꿀 수 있고, 고용전망이 가장 밝은 곳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또 실업수당도 유럽보다 취약하다 보니 일할 동기도 부여되는 상황이다.

이런 유형의 미국식 모델은 기업이 침체기를 맞아 감원에 나서면 실업률이 치솟게 되지만 일단 경기회복기에 들어서면 회복이 한층 빨라져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진단이다.

하지만 미국경제는 최근 들어 여러 측면에서 유럽의 경직된 노동시장처럼 돌아가고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닷컴 호황기가 막을 내린 이후 고용시장 회복 속도가 둔화하고 실직자들이 일자리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 역시 한층 길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코노미스트인 무라트 타시는 최소한 지난 10년간 미국인들의 이직이 훨씬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직률이 낮을수록 사양세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과 업종 종사자들이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들과 업종으로 옮겨가는 속도가 늦어지고 이에 따라 궁극적으론 실업률이 정상을 되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더 길어진다.

지난 수십년 사이 미국인들의 이주비율이 감소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런 현상은 주택경기 침체로 집을 팔고 일자리를 찾기 쉬운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어렵게 되면서 한층 심화하는 추세다.

실제로 미 상무부 산하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이사한 미국인 비율은 전체의 11.6%로 지난 1985년 20.2% 선을 크게 밑돌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