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 출신 엄마, 육군소령 아빠, 우수한 자녀들
‘완벽한 가정’의 허울 벗겨지며 드러난 어두운 이면
엄마 손에 죽는 자녀 미 전국서 매년 200명 넘어
플로리다주 ‘탬파 팜스’는 범죄를 피해 안전한 동네를 찾는 사람들이 이사 오는 지역이다. 잘 손질된 잔디와 넓은 베란다가 시원한 집들이 들어 선 이 게이티드 ‘빌리지’는 ‘최고의 학군’과 18홀 골프코스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어 부동산 에이전트들이 일생 휴가 온 듯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소개하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이곳 주민들은 이런 근사한 겉모습이 얼마나 속기 쉬운 허울인 지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 1월28일 아침, 탬파 팜스 내 조용한 막다른 골목안 2층집에 도착한 경찰이 목격한 현장은 참혹했다. 피 묻은 흰 목욕가운을 입은 채 패티오에 있던 엄마 줄리 쉐넥커(50)는 인사불성이었고 안쪽에선 딸 칼릭스(16)와 아들 보(13)의 피투성이 시체가 발견되었다.
미 중앙사령부 소속 정보장교인 파커 쉐넥커 소령의 아내 줄리는 살인혐의로 구속되었다. 자신이 두 자녀를 쏴 죽였다고 인정한 그녀는 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아이들이 “무례하고 말대꾸가 너무 심해서”라고 대답했다.
집안에서 두 개의 메모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38구경 권총 구입 관련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엔 살해 경위가 적혀있었다. 경찰이 전하는 사건의 경위는 듣는 사람들을 전율케 했다.
줄리는 전날 오후 아들 보를 차에 태우고 사커(축구) 연습에 데려다주다 차안에서 “말대꾸하는” 아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집으로 되돌아 와 그라지에 차를 세운 그녀는 두발의 총을 맞고 안전벨트를 한 채 숨진 아들의 시체를 앞좌석에 그대로 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이층 베드룸으로 올라가 컴퓨터 앞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딸 칼릭스에게도 뒷머리에 한방, 얼굴에 한 방을 쏘았다. 딸의 시체를 침대로 옮기고 담요를 덮은 줄리는 차안 아들의 시체에도 담요를 덮었다.
메모에는 총기구입 후 총을 받기까지 3일을 대기해야하는 규정 때문에 “학살(massacre)”을 늦춰야했다는 불평과 함께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죽였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그녀가 왜 자살계획을 번복했는지, 왜 패티오에서 인상불성으로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밖에서 본 쉐넥커 가정은 대부분 미국인들이 동경하는 완벽한 교외의 삶(picture-perfect suburban life)이었다. 아들과 딸의 스포츠 연습장을 번갈아 카풀하는 ‘축구엄마(soccer mom)’, 예쁘고 잘생기고 재능 넘치는 우등생 두 자녀와 부부가 활짝 웃으며 찍은 가족사진으로 만든 크리스마스카드, 스키와 뱃놀이 등으로 이어진 패밀리 주말여행…그 아름다운 장면들과 너무 끔찍한 이번 사건을 도저히 연결시키기 힘들어하는 이웃과 친지들, 특히 아이들의 교사들은 아직도 경악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딸의 트랙코치인 게리 빙햄의 기억 속 줄리는 언제나 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팀원들의 저녁식사에도 참석하고 코치의 생일 케익까지 챙기던 전형적 축구엄마였다. 칼릭스에게서 엄마나 집안에 대한 어떤 불평도 들어보지 못했다. 눈알을 희번덕이며 부들부들 떨면서 연행되는 TV스크린에 비친 줄리는 그가 알던 모범 학부모가 아니었다. 그는 TV 속 여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 “저사람 누구야?”
8학년 교사가 전하는 아들 보 역시 늘 명랑하고 공부 잘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원만한 가정의 전형적 아이였다.
그러나 징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보통 가정에서 살다가 겪을 수 있는 것으로 넘어갔을,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면 비극의 전조였던 일들이었다.
지난 11월 줄리는 자신의 벤츠로 트레일러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일으켰었다.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고속순찰대원은 줄리가 동공이 확대되고 발음이 꼬이는 등 마약에 취한 증상을 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간 줄리는 피검사를 받기 전 귀가조치 됐다.
이틀 후 쉐넥커의 집에는 경찰이 찾아왔다. 딸 칼릭스가 학교에서 카운슬러에게 “엄마에게 얼굴을 맞았다”고 말한 사실이 보고된 것이다. 줄리는 때린 것을 인정했다. 딸이 엄마에게 “진저리가 난다(disgusting)”라고 욕하며 “당신은 부모도 아니야”라고 대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범죄’가 아닌 가정문제로 결론짓고 돌아갔다.
남편과 두 자녀가 마약·알콜 중독자 가족모임에 참석한 적도 있었고 2009년 노스아이오와 대학 동창모임에서 줄리를 만났던 한 친구는 “그때 줄리의 눈이 텅 비어있는 듯 했다”고 지금 와 전한다.
엄마의 자녀살해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일이지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미 전국에서 매년 200건이 넘게 발생한다. 학대나 방치 등을 통해 죽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4분의 1은 고의적 살해다. 2001년 5자녀를 익사시킨 안드레아 예이츠, 95년 집에 불을 질러 두 자녀를 살해한 여의사 데보라 그린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평소 헌신적 엄마였다는 것. 정신병력과 실연이나 이혼, 사회적 소외 등의 스트레스가 극단의 폭력으로 표출되는 게 대부분인데 자살을 계획하면서 아이들이 엄마 없이 남겨지는 것보다는 죽는 편이 낫다는 망상 속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 분야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체포된 후 카운티 교도소 의료병동에 수감 중인 줄리에 대한 진단 결과는 아직 발표된 것이 없다. 관선변호사는 정신이상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추측되고 이 케이스에 대한 언급을 거부한 검찰은 4월초가 되어야 사형구형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발생 당시 중동에 파견되었던 남편 파커 쉐넥커 소령은 아이들의 장례식장에서 추모사를 통해 “아이들의 삶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한 것 외에는 일체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달 교도소로 아내를 찾아가 이혼소송 제기를 통보했다는 사실만 대변인을 통해 밝혔을 뿐이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보(왼쪽)와 칼릭스 쉐넥커 남매.
자신이 두 자녀를 죽였다고 범행을 인정한 줄리 쉐네커를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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