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첫째와 둘째는 서로 많이 다르다. 첫째 아이는 딸로서 성격이 활달한 반면 둘째인 아들 녀석은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건강하고 분주해 먹는 것도 왕성했으나 둘째는 먹는 것도 빈티 나게 먹어 엄마아빠를 많이 애타게 했다(지금은 완전히 다름). 하나 더 보태자면 큰애는 웬만해선 다 넘어가는데 작은애는 웬만해서는 잘 안 넘어간다. 하여튼 이렇게 서로 다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가끔 쟤가 누굴 닮아서 저러지 하며 실소를 짓곤 한다.
한 가지 감사한 건 딸 큰애의 성격이 그쪽인 점이다. 딸인데도 과묵하거나 소심해 삐지기 잘하는 쪽이었더라면 부모인 우리도, 지 동생도 그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랑하고 친절한데다가 지나칠 정도로 오지랖이자 다방면에 뛰어나, 그로 인해 가끔은 대형사고가 터지나 전반적으로는 매우 편한 편이다.
아들의 생일은 12월 28일이다. 걔 임신 후 나온 계산으로는 1월 초쯤이 생일이어야 했다. 그런데 1주일 정도 빨리 나와 그날이 지 생일이 되고 말았다. 내심 우리는 연초 1월 1일이었으면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의 생일은 본의 아니게 최근 몇 년간 현실적인 외면을 당해왔다. 현재 다니는 이 교회에서는 매년 연말에 중고등부 수양회를 간다. 그래서 그 뒤로 한 번도 현실적인 축하를 받아보지 못했다. 가족들로부터는 물론 친구들에게까지도 현실적인 생일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현실적’이란 선물을 뜻한다. 수양관에 올라갔으니 친구들이 선물을 준비해갔을 리 없다. 또 케익도 없는 생일 축하노래만 들어야만 했다(비록 많은 친구들이 불러 줬어도).
그런데 몇 주 전 딸애가 엄마한테 청하기를, “엄마, 성은(자기 동생)이는 몇 년간 한 번도 생일축하 제대로 받아본 적 없잖아. 그래서 내 생각인데, 이번에 서프라이즈 파티 한 번 해줘야 될 것 같애.” 하는 거다. 무려 20명을 식당에 초대하겠단다. 대책도 없이 그냥. 오지랖 성격이 또 한 건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돈 생각 잘 안(못) 하는 것 같다. 우리는 판세가 이렇게 될라 치면 벌써 머리 속에 주판알 튕기며 돈 걱정부터 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식은 아니다. 동생을 그저 배려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누나의 갸륵한 동생 생각에 감탄해, 또 우리도 부모로서 좀 너무했다 싶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돈 걱정은 일단 미루고.
오늘(12월 31일)이 그 날이었다. 누나는 007 전략을 짜 친구들을 식당에 미리 초대했다. 아들을 속여 식당으로 데리고 가는 역은 내 담당이었다. 결과가 어땠을까? 거짓말 하면서 안 하는 척,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게 참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역할이 워낙 중차대해 최대한 머리 써 했는데 다행히 통했다. 아들은 나를 철썩 같이 믿어줬다. 완전히 속은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누나의 오지랖의 발이 동생에게까지 곱게 뻗친 이 사건은, 비록 크레딧 카드 빚은 많이 졌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는 흐뭇한 마음이 전달되는 일로 마감되었다.
이제 본론을 말해야겠다. 난 이 ‘흐뭇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 짤막한 최근 가족사(家族事) 하나를 이 지면에 소개했다. 자찬 같지만 딸애의 그런 마음이 고마웠던 것이다.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동생을 향해 지니고 있는 이 배려의 마음 말이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에도 감동을 잘 받는다. 그런데 그 감동은 우리 안에 기대 이상의 많은 에너지를 공급시켜준다. 그 중의 ‘작은 것 하나’가 이런 배려의 마음이다. 사람은 주목을 받아야 힘이 생긴다. 내 자신을 향한 존재감이 사라지면 인생살이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래서도 상대를 향한 작은 배려는 상대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좋은 에너지원이다.
아들은 성격도 그런데다 누나에 비해 덜 주목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며 살았던 것 같다. 딱 한 달 앞에 있는 누나 생일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한 화려한 파티를 치렀는데(물론 이것도 딸애 자신의 오지랖에 의한 거였지만…세상에, 자기 생일을 자기 주관 아래 화려하게 치렀으니까!), 난 뭐지, 난 맨날 카드나 선물도 없는 산상 파티?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서프라이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그 후 또 옆에서 지켜보니 주목 받았다는 느낌에 빠져 상당한 시간 동안 무척 신나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새해에는 배려의 마음들이 오갔으면 좋겠다. 교회 안을 둘러보면 분명 주목 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 또 받더라도 덜 받는 분들이 있으며 교회 봉사의 직책에도 솔직히 그런 자리는 있다. 숨어서만 일해야 뭔가 되는 그런 자리다. 금년에는 그런 분들을 향한 배려의 마음을 더 가지기를 바란다. 그 결과는 앞서 말한 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가 될 것이다. 배려 받고 주목 받으면, 존재감의 급상승, 상상 이상의 에너지 발산, 또 그로 인한 역동적인 공동체로의 변모, 이런 긍정적 순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노력해주면 될 것 같다. 너무 크게 시도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사이즈에서 작은 것 하나만 해줘도 많은 게 이뤄진다. 배려의 마음이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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