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피해를 딛고 청소기 ‘컬비’의 한인시장 담당자로 재기한 제이 박 대표가 지난 16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청소기 ‘컬비’의 한인시장 담당자인 제이 박 대표가 4·29폭동 당시 전소된 ‘캄튼타운 인도어 스왑몰’ 자리에서 폭동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컬비 청소기’ 한인총판 제이 박 대표
상처는 깊었지만, 잘 치료돼 아문 상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또 다른 힘이 된다. 16년 전 4·29폭동으로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었던 ‘폭동 피해자’ 제이 박(55)씨. 사우스LA에 있던 스왑밋이 통째로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던 박씨는 당시 입었던 심적·경제적 상처를 이제는 모두 딛고 일어섰다. 지금은 ‘컬비’ 청소기의 한인시장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박씨는 4·29폭동 16주년을 맞아 캄튼과 센트럴 남서쪽 코너에 있던 ‘캄튼타운 인도어 스왑밋’ 자리를 찾았다. 16년이 지났어도 아직 허허벌판인 그 땅을 바라보며 “이제는 담담하다”고 말하는 박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폭동을 극복하면서 가족사랑, 이웃사랑을 깨닫게 된 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가족 비즈니스 캄튼스왑밋 폐허
하루아침에 빚더미·땅까지 차압
신앙으로 평안, 경제적 성공도
28년 전, 그의 나이 스물여덟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왔다. 1970년대 이민 1세들이 그렇듯 그 역시도 낯선 땅, 낯선 도시에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가족들을 도와 청소업에 종사했고 식당도 하나를 오픈했다. 반응이 좋았다.
80년대 후반엔 사우스LA 캄튼에 중형 스왑밋도 소유하게 됐다. 박 대표 가족은 물론 약 60여명의 입주자들이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가던 곳. 바로 ‘캄튼타운 인도어 스왑몰’이다.
■폭동의 악몽
1992년 4월29일. 그 날 일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박 대표와 가족들이 스왑밋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 약 4년쯤 지났을 때다.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LA 경찰 4명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입주자들을 일찍 돌려보내고 스왑밋 문을 닫고 나왔다. 시큐리티 가드였던 흑인 토마스를 비롯해 스왑밋 주변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던 홈리스들이 “우리가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TV를 통해 주변 스왑밋에 폭도들이 진입한 장면이 보였다. 불안했다. 예상대로 핸드폰이 울렸고 경비업체는 스왑밋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알람이 울린다고 했다. 그 순간, TV에서 불에 활활 타고 있는 스왑밋이 보였다. 간판엔 ‘캄튼타운 인도어 스왑몰’이라고 쓰여 있었다. 미국에 와서 일군 모든 것들이 그렇게 화염에 휩싸여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그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죠”
며칠쯤 지났을까. 다시 찾아간 곳은 한 마디로 전쟁터요, 폐허였다.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잘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 있나…’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5년
무척이나 힘들었다. 잘 나가던 ‘스왑밋 사장’은 하루아침에 부채를 떠안은 ‘빈털터리’가 됐다. 당시 피해액을 어떻게 집계할 수 있겠는가. 스왑밋 구입 당시 다운페이 했던 모든 돈이 날아갔고 론은 고스란히 부채가 됐다. 스왑밋 안에 3개의 매장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인벤토리까지 합하면 피해액은 어마어마하다. 스왑밋 부지는 은행에 차압되고 말았다.
4월29일이 지나간 5월은 잔인했다. 복구를 위해 ‘폭동피해자협회’가 생겼고 대변인을 맡았다.
“당시엔 모든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피해자였죠. 우리 스왑밋 입주자들도 그 작은 가게가 그들의 모든 것이었고, 경제가 10년 정도 후퇴하면서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된 셈이죠”
무엇이든 시작해야 했지만 망가진 크레딧 때문에 쉽지 않았다. 바닥끝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뿌린 기도의 씨앗이 조용히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
박 사장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어지면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종교적인 체험이 잇따랐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붙여주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사람을 통해, 환경을 통해 길을 열어주셨고 좋은 만남을 붙여주셨다”고 말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청소기 ‘컬비’(KIRBY)와 인연이 닿았다. 세일즈맨을 시작으로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제는 한인시장 판매를 담당하는 ‘LA 컬비 코퍼레이션’의 대표가 됐다.
■16년 후 지금
4월만 되면 달력 속 29일이라는 숫자에 마음이 아렸는데 이젠 괜찮다. 오히려 흑인 커뮤니티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사회구조상 그들이 교육과 희망으로부터 멀어져 있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박 사장 마음속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다.
경제적 상처는 어떤지 물었다. “그만큼 복구하긴 쉽지 않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땐 돈 벌 생각만 하며 살았죠. 가정의 행복도 몰랐고,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삶의 여유도 없었어요. 이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요. 가정과 이웃 사랑이죠. 그 이웃에 흑인들도 있고 히스패닉도 있고, LA에서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박 사장은 4·29폭동은 한인사회에 아픈 기억이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것처럼 모두의 삶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승화되길 바란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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