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 재기…사랑 나누기는 ‘덤’
이불마트 김홍수 대표
아메리칸 드림 터전 리커 잿더미
한국-LA 수차례 ‘역이민’
이불 비즈니스로 인생의 전환점
‘사랑의 담요’ 캠페인으로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김홍수 이불마트 대표는 4.29폭동 피해자다. 폭동으로 일순간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봤기 때문에 못 가진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됐고 생면부지의 이웃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참된 이웃 사랑의 가치도 가슴 깊숙이 깨닫게 됐다. 폭동으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우연한 계기에 이불업종으로 뛰어들어 노숙자를 위한 ‘사랑의 담요’ 캠페인을 펼치면서 미전역은 물론 한국에까지 이불마트 지점을 내는 등 비즈니스가 확장일로를 걷는 것도 김홍수 사장의 이웃 사랑과 기업의 커뮤니티 이익 환원이라는 경영철학 때문일 것이다.
폭동으로 폐허가 된 43가와 브로드웨이 코너(128 E. 마틴루터킹블러버드)의 우드론 리커에서 실의에 빠진 김홍수 사장.
폭동의 악몽에서 벗어나 재기에 성공한 김홍수 사장이 엘몬테 이불마트 본사에서 사랑의 담요 캠페인을 설명하고 있다.
■폭동은 악몽이자 인생의 전환점
“지금도 16년 전의 폭동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집니다. 리커를 운영하면서 흑인강도에게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폭동으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절망감 때문에 방황했습니다”
폭동 당시 사우스센트럴 43가와 브로드웨이 코너에서 리커를 운영했던 김홍수 사장은 “폭동으로 경제·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폭동은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됐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 중견 화학회사의 임원으로 일했던 김홍수 사장은 지난 85년 홀로 도미, 주유소와 마켓에서 펌프, 캐시어일을 하면서 미국생활을 밑바닥부터 배웠다.
2년간 고생하면서 모은 자본금과 은행융자 등을 합쳐 잉글우드의 한 리커를 87년, 15만달러에 인수했다. 우범지대의 이 리커에서 은행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흑인강도가 쏜 권총의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아찔한 순간에도 천우신조로 살아난 그는 근면과 성실로 비즈니스를 크게 키웠으며 90년에는 부인 남옥씨와 장녀 현아, 차남 동우도 합류하고 사우스LA에 50만달러 상당의 리커를 매입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92년 4.29폭동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한줌의 재로 날려버렸다. 비즈니스 보험에 가입했던 회사가 파산하면서 보상을 받지 못해 15만달러의 재고를 포함, 70만달러 상당의 비즈니스를 한 순간에 날리고 거리에 나앉게됐다. 주택도 차압당하고 푸드스탬프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생활이 2년 가까이 됐다. 푸드스탬프를 들고 노숙자들과 함께 줄을 서면서 그는 가지지못한 자의 설움과 어려움을 피부로 뼈저리게 느꼈다. 폭동성금 3,000달러와 친지의 도움으로 생활하면서 리커영업을 재개하기 위한 공청회도 6차례 가졌지만 시의회의 반대로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절망감 끝에 택한 것이 한국으로의 역이민! 한국의 한 중견 건설업체에서 3년 정도 일하면서 자리를 잡을 만하니까 이번에는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졌다. 환율이 폭등하고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사직할 수 밖에 없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담요는 사랑을 싣고
98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김홍수 사장은 결혼을 앞둔 딸의 혼숫감을 고르다가 우연히 이불 비즈니스의 잠재성을 알게 돼 단가가 싼 한국에서 이불을 제조한 후 수입해 미국시장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2001년에 들어서야 비즈니스가 궤도에 올랐으며 2002년 7월 한인타운에 이불마트 1호점을 열고 이제는 좀 살만 하니까 그해 9월 롱비치 파업이 터졌다. 38개 컨테이너의 이불이 하역을 못해 롱비치 항구에 한달간 묶여 있었다.
겨울철을 앞두고 물건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해 비즈니스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 김사장은 “다운타운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노숙자들이 겨울에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노숙자들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담요를 나눠주기로 결정했다”고 회고했다. 폭동, IMF, 롱비치 파업 등 계속된 시련으로 나락에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 김 사장은 사랑에 빚진 자가 이제 그 빚을 갚을 때가 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해 겨울 거리선교회 김수철 목사와 함께 300장의 담요를 나눠 준 것을 시작으로 노숙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커뮤니티의 협조로 현재 6년째 매 겨울마다 다운타운의 노숙자들에게 이불을 나눠주고 있다. 지난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한인들에게도 500여장의 이불을 전달한 것을 비롯, 그해 겨울 LA와 서울에서 동시에 노숙자들에게 ‘사랑의 담요’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펼쳤다.
■이불 하나로 세계를
이불마트는 현재 LA, 토랜스, 가든그로브, 밸리, 세리토스, 로랜하이츠, 애틀랜타, 시카고, 시애틀, 알래스카 등 10여개가 넘는 체인점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9월에는 한국 부천에 ‘엘리자로’를 상호로 내건 매장을 오픈했고 중국 등 세계시장 개척도 구상중이다.
이불마트의 자체 브랜드인 ‘엘리자로’는 제작부터 한인에 맞춘 디자인과 최상의 품질, 가격 경쟁력까지 고려됐기 때문에 한인 수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진출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웹사이트(www.ebmallusa.com)를 개설, 미전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가능해졌다.
그는 지난 3월1일 김수철 목사, 유의찬 목사와 함께 4박5일 동안 북한을 방문해 헐벗고 굶주린 북한의 아동들에게 담요 1,000장을 전달했다. 김 사장은 “북한의 애육원을 방문해 담요 전달때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보면서 동족으로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6.25때 헐벗고 굶주렸던 우리를 도와준 월드비전과 컴패션 등 구호단체를 통한 기부를 통해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예전에는 나만 알고 살았지만 폭동 당시 생면부지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웃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고 ‘사랑의 담요’ 캠페인을 펼치게 됐다. 지금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힌 김 사장은 ‘사랑의 담요’ 캠페인에 동참해 준 한인 교계와 은행, 저금통을 깨고 푼돈을 보탠 고사리 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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