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총재가 식당에서 유권자들을 만난 뒤 밝은 모습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총선이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TK 유권자들은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 선거구에 걸린 후보들의 현수막.
총선D-1,특파원 리포트
고민하는 TK 민심
<대구-김연신 특파원> “이명박 대통령이 반칙을 하니까 박근혜 전 대표가 뿔이 난기라. 그런 엉터리 공천이 우데 있노?” “TK(대구·경북) 사람들이 한나라당 안 도와주면 누가 도와줍니까.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려면 국회의원들하고 손발이 맞아야죠. 한나라당이 보약을 달라는데 우리가 먹여줘야지요.”
한나라당 ‘살생부’에 올랐던 ‘친 박근혜계’ 의원들이 공천에 탈락한 것에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일종의 집단적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한나라당이 대통령 측근들로 후보를 공천한 것도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었다. 영남은 박근혜와 한나라당 중에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었다.
대구 서구에 출마한 홍사덕 친박연대 선대위원장이 한나라당 후보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등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텃밭 대구에서 ‘싹쓸이’를 장담하기는 힘들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친박’ 바람을 막고 얼마나 문단속을 잘하느냐가 대구·경북 지역 총선의 관전 포인트다.
LA에서 총선을 취재하려고 왔다는 기자에게 택시 기사 신종수(39)씨는 “대구 사람들도 관심이 없는 선거에 LA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요?”라며 “택시 타고 정치 이야기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박근혜 팬이라는 신씨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 사퇴하고 나서 속상해서 대선 때는 투표도 안했다”며 “총선 때는 박 전 대표를 위해 친박연대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장년층 유권자 일수록 한나라당이 ‘절대안전 과반의석 확보’를 호소하며 내세운 ‘보약론’과 ‘안정론’에 마음이 끌리는 듯 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동행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구 시내에서 만난 자영업자 박 모(51)씨는 “5대 광역시 가운데 인구가 줄어드는 곳은 대구뿐”이라며 “경제를 살리자고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으면 이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공천파문과 박근혜 마케팅으로 왜곡된 선거에서 유권자들을 위한 정책대결이 사라진 점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컸다.
영남대에 재학중인 강혜선(23)씨는 “대학을 졸업해도 대구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며 “대기업 시설을 유치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이나 정책을 알리는 후보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40대 주부 황모씨는 “20년 전에 대구로 시집오고 나서 선거 때 호남-영남 지역감정 이야기가 안 나오는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지역감정에 사그라지니까 집안싸움으로 시끄럽다”고 말했다. 20대 젊은이는 “박근혜와 함께 살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써진 ‘친박’ 후보의 현수막을 가리키며 “도대체 무엇을 살리겠다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의 한지붕 두가족 살림을 지켜보는 영남의 표심은 선거 종반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우야겠노... 달리 방법도 없데이...”
지난 5일 대구 달성군 옥포면의 한 경로당을 찾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한 노인이 던진 ‘위로의 말’이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측근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지난 3월 24일부터 지역구인 달성으로 내려가 유세를 하며 머물고 있다.
유세라고 하지만 하루에 10여개의 경로당과 상가를 돌며 지역구민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다. 지역구 유세를 앞세워 한나라당 지도부를 상대로 공천파동에 대한 ‘무언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만나고 나온 박 전 대표는 “작년에 미국 갔을 때 교민들이 많이 반겨주셨는데 미국에서 먼 길 오셨네요”라며 “한국의 농촌도 많이 발전할 겁니다”라고 짧은 인사말을 건넸다. 박 전 대표는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한 어린이가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하자 반갑게 포옹을 하기도 했다. 유권자들은 힘내라는 말을 할 때도 특유의 미소로 답할 뿐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2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있는 3평 남짓의 마을회관 방에 직접 들어가 노인들과 무릎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달성의 유권자들은 박 전 대표가 나타날 때마다 대처에 나났던 큰 딸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것처럼 반갑게 맞았다.
한 70대 노인은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달성에서 와신상담을 하겠냐”며 “박근혜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달성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고 말했다. 박 후보를 만나기 위해 유세 일정을 물어물어 찾아 왔다는 40대 부부도 있었다. “팔과 다리가 다 잘린 박 전 대표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박 전 대표의 한 관계자는 “어제(4일) 경북 지역의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 후보들이 달성에서 유세중인 박 전 대표를 단체로 ‘깜짝’ 방문해 사진을 찍고 ‘박근혜 대표 만세’를 외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었다”며 “박 전 대표이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원체 성격이 담대하고 원리 원칙을 강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중앙당의 지원유세 요청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4시가 돼서야 유세 일정을 마치고 혼자 머물고 있다는 달성의 24평 아파트 숙소로 돌아갔다. 한 측근은 “총선이 끝나면 서울로 올라가 정치개혁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박 전대표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다음 날인 6일 대전 중구에 출마한 최측근 강창희 후보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첫 외출‘을 해 그 배경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4.9 총선 직전 까지 ‘박풍’의 위력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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