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싱 유니온 스트릿 소재 에바다 한약방 건재 도매상의 김 준 사장.
미 동부지역에 질 좋은 한국산 약재의 보급에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한약재 취급은 물론 간단한 탕약처방도 병행하는 에바다한약방·건재도매상의 한인 1.5세 김 준(32)씨.
9학년 때 한국을 떠나 뉴욕에서 공부를 시작한 김 씨는 동부지역에도 한의대학교가 몇몇 있지만 한문을 써서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곳을 찾기 힘들어 캘리포니아 행을 택했다고. 캘리포니아 사우스 베일로 한의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한인타운 인근 한방병원에서 임상경력을 쌓던 그가 다시 뉴욕 행을 택한 것은 한의사로서 활동한지 불과 6개월째도 채 안돼서다.
한의사로 활동하며 나름 보람도 있었지만 늘 한약재에 대한 지식에 한계를 느꼈다는 김 씨는 한의사는 진맥도 잘해야 하지만 한약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중요하다며 사업을 시작한 동기를 밝혔다.
한국과 가까운 캘리포니아 주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며 질 좋은 한국산 약재를 많이 접하다 보니 한 눈에 중국산과 한국산이 비교 되더군요라고 말문을 연 김씨는 동기는 한약재를 배우기 위해서였지만 어느 정도 지식을 쌓은 후에도 한국산 약재를 동부지역에 보급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건재상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금은 건재상으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지만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주변에 아는 한의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고. 매일 텅 빈 매장을 바라보던 그는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손님을 찾아가자’고 마음먹었다.
당시 29살이었던 그는 매일아침 인근지역 한의원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두 달간 100여명의 한의사를 만난 것 같다는 김 씨가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던 것은 다름 아닌 한약재. 그는 ‘젊은 사람이 뭘 알겠느냐’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취급하는 한국산 한약재를 보여줬다고. 한번 그의 약재를 본 한의사들은 단번에 좋은 약재라는 것을 알아봤고, 그렇게 김 씨의 건재상으로부터 약재를 받기 시작한 한의원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약재 판매망 구축이 아니었다. 한약방도 병행하다보니 진료도 보고 탕약도 달여 주던 김 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젊은 한의사를 믿지 못하는 손님’이다. 오래전 한약을 짓기 위해 한 노인 부부가 에바다 한약방에 들어섰는데 제 얼굴을 보더니 단번에 돌아 서시더군요라고 말하는 김 씨는 젊다고 믿지 못하는 환자 중에는 진맥조차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환자들의 발길을 돌린 계기는 바로 ‘정확한 진맥’이었다. 그는 진맥을 통해 몸에 아픈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어 신뢰를 구축한 것이 오늘날 자리잡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한다.2년 반 동안 약재를 판매하며 친분을 쌓은 한 한의사를 통해 맞게 된 그의 첫 외국인 손님은 우연찮게도 의사의 부인이었다. 그렇게 찾기 시작한 외국인 손님을 통해 조금씩 미 주류시장으로 한약을 널리 알리는 것이 김 씨의 목표다. 그는 지금은 한인과 중국계가 몰려있는 뉴욕에 있지만 기회가 닿는 다면 커네티컷주 등 동양계 손님층이 두텁지 않은 곳에서 건재상을 운영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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