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도 이전에 이민 온 한인들은 김치와의 결별을 각오하고 고국을 떠났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속이 느글거려 캐비지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으며 견뎠다. 그 시절 C박사는 다행이 결혼한 학생 부부여서 주말에 유학생들이 몰려오면 제대로 된 캐비지 김치를 먹여보냈다.
우리 가족은 78년 1월13일 밤 김포공항을 떠나 하와이에서 입국 수속하고 한밤중에 LA 공항에 내렸다. 지친 몸으로 대한항공 직원인 친구 집에 가서 김치를 보니 목이 메었다. 다시 늦은 밤 동양인은 우리뿐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타고 버틴 건 그 김치로 충전된 힘이었을 것이다.
이민 온 그 해 여름 LA까지 중고 소형차를 몰고 구경갔다. 자그마한 한국식품점에 진열된 갖가지 김치들을 보고 여기가 오아시스구나, 거기 사는 친구가 부러웠다.
1977년 2월 덴버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한인 두 세대가 김치냄새에 못 견디겠다는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2년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이제 문제삼는 것은 자기들을 몰아내려는 저의라고 한인들도 버티었다. 덴버 한인회장도 법적 하자가 없는 한 적극 대응키로 했으며 결국 김치문제가 법정으로 가게 되었다. 담당판사는 음식 냄새를 판결할 수 없다는 기지를 발휘, 화해를 종영하고 5분만에 재판을 끝냈다. 원고는 소송을 취하하고 한인들은 자진 퇴거했다. 김치를 포기하고 전처럼 머물 것인가 아니면 김치와 함께 떠날 것인가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영어 사전에 제일 먼저 올려진 한국어가 김치, 외국인들에게 가장 알려진 것도 김치였다. 내가 다니던 직장의 수퍼바이저 금발의 여인은 한국인 태권도 사범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햄버거 안에 김치를 넣어 먹었다. 존경하는 사범께서 김치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했단다. 미국인 고객이 더 많은 오클랜드 한인식당 여주인은 미국 TV에 출연하여 김치를 소개했는데 열심히 설명을 듣던 흑인 촬영기사도 김치를 손으로 집어 맛있게 먹더란다.
요즈음 김치 종주국인 한국이 일본과의 김치 전쟁에 이어 중국과도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 인해전술에 밀리더니 이제는 중국산 싼 김치에 밀려 한국은 김치 수입국이 되었다. 한국 대형 서점 안 간이식당에 가보면 젊은이들은 햄버거 샌드위치를 사먹는다. 미국에서 장가 간 아들집 식탁에 김치 없음처럼 왠지 서운해진다.
홍길동을 쓴 허균은 귀양갔을 때 너무 배고파서 먹고 싶은 음식을 구해다가 ‘도문대작’이라는 음식 책을 썼다. 김치도 예나 지금이나 삶이 급박하고 절실할 때 찾는 음식인가보다.
아랍 테러범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김선일씨가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김치랑 자장면이 제일 먹고 싶다는 대목에 이르러 목이 메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제사상에는 김치 없는 게 이상하다. 내가 세상 떠난 훗날 일년 중 하루만이라도 아이들 밥상에 아비를 생각해서라도 김치 한보세기 놓여졌으면 좋겠다.
이재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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