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여년 전 플로리다로 날아든 3기, 지금은…
▶ 미, 쿠바의 반환요구 거절 경매로 팔아, 매입자들 장래 투자가치 기대했으나 매년 비싼 격납고 보관료만 속절없이…
2003년 4월 1일 쿠바항공 소속 여객기를 납치해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국제공항에 강제착륙 시킨 아데르미스 윌슨 곤잘레즈(왼쪽 작은 사진) 가 어린 아들을 안은 채 몬로 카운티 SWAT 요원들에 의해 포위된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10여년 전 쿠바에서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인터내셔널 공항으로 날아든 세 대의 비행기는‘상업적 가치’가 별로 없다. 가지고 있어 봤자 관리비도 안 나온다. 차라리 기체를 해체해 쓸 만한 부품을 골라낸 후 고철로 팔아버리는 편이 낫다. 지난 2003년 4월 이전의 6개월간 연이어 키웨스트 공항에 착륙한 쿠바 비행기는 법적으로는 모두 부당 취득물, 곧 ‘장물’이다. 정당한 소유주는 물론 쿠바 정부다. 이들 가운데 두 대는 하이재커에 의해, 나머지 한 대는 조종사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키웨스트 인터내셔널 공항에 내렸다.
첫 번째 비행기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구 소련제 안토노프 AN-2 콜트 기종의 농약살포기로 2002년 11월 플로리다로 넘어왔다.
조종사인 네멘치오 카르로스 알론소 구에라는 이 조그만 복엽기에 7인의 ‘승객’을 싣고 116마일을 저공으로 비행, 플로리다해협을 건너 자유의 품에 안겼다.
‘아메리칸드림’에 홀린 반혁명분자들의 항공 탈주극에 화가 치민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 정부를 향해 “불법취득 한 비행기”를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민간기 하이재킹은 ‘납치범’의 범행 동기에 상관없이 국제법상 ‘해적행위’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피랍기는 미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국제 장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안토노프 AN-2 콜트기가 하이재커에 의해 납치된 것은 아니었으나 쿠바의 소유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비록 무례한 독설로 채워지긴 했지만 카스트로의 기체 반환요구는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피랍기 처리는 예상 궤도를 이탈했다. 플로리다주 연방 지법이 쿠바 자산인 비행기에 덜컥 압류 결정을 내린 것.
기체 사후처리 과정에 법원이 끼어든 것은 쿠바계 미국 여성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아나 마르가리타 마르티네즈로 신원이 밝혀진 이 여성은 쿠바 스파이의 ‘신분위장용 현지처’였다.
멋모르고 속아 간첩과 결혼했던 마르티네즈는 남편 후안 파블로 로쿠에가 마이애미에 기반을 둔 반 카스트로 그룹 ‘브라더스 투 더 레스큐(Brothers to the Rescue)에 침투, 정보를 빼낸 후 1996년 쿠바로 도주하는 통에 엉뚱한 피해를 보았다.
‘브라더스 투 더 레스큐’는 쿠바인들의 탈출을 지원하는 그룹이었는데, 로쿠에가 쿠바로 도망간 바로 다음날 이 단체 소속 세스나기 두 대가 공해상에서 쿠바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면서 네 명의 조종사가 숨졌다. 쿠바 주민들의 탈출수단이 수장된 셈이다.
미국 정부는 로쿠에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카스트로 정권이 저지른 테러행위로 결론지었다.
‘간첩의 여자’라는 딱지와 함께 생과부 신세가 된 마르티네즈는 9.11사태 이후 제정된 반테러법에 따라 쿠바로부터 2,70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실제로 돈을 손에 쥘 가능성은 제로였다. 카스트로가 배상금을 지급할 리 만무했다.
이런 와중에서 쿠바의 농약 살포기가 넘어오자 마르티네즈는 미국 정부가 기체를 압류해 매각한 후 그 대금을 자신이 카스트로 정권으로부터 받아야 할 배상금의 일부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AN-2 콜트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바로 다음날 경매에 부쳐져 7,000달러에 매각됐다. 낙찰을 받은 주인공은 마르티네즈였다.
어차피 기체 매각대금은 그녀의 몫이니 싼 값에 비행기를 직접 구입한 후 이윤을 붙여 되팔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바뀐 그녀는 고철이나 다름없는 비행기를 쿠바계 예술가 세비에르 코르타다에게 선물로 주었고, 코르타다는 기체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 넣은 후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FIU)에 기증했다. 현재 이 비행기는 방수포를 뒤집어 쓴 꼴사나운 모습으로 캠퍼스 한켠에 방치되어 있다.
두 번째 넘어온 쿠바 비행기는 DC-3기였다. 2003년 3월 칼로 무장한 여섯 명의 하이재커들은 조종사를 위협해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공항에 DC-3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켰다.
그로부터 13일 뒤 이번에는 아데르미스 윌슨 곤잘레즈라는 남성이 안토노프 AN-24 여객기를 공중 납치해 같은 공항으로 끌고 왔다.
이들 두 대의 비행기는 앞서 쌍엽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매에 넘겨졌고, 두 명의 예비조종사 웨인 반 호이스덴과 매튜 오버톤에게 각각 1만2500달러와 6,500달러에 팔렸다.
이들 중 호이스덴은 의약품을 가득 채운 DC-3기를 쿠바로 직접 몰고 가 카스트로에게 몽땅 선물로 줄 생각이었지만, 비행을 위해선 쿠바 정부가 발행한 과거의 정비문서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 탓에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매월 비싼 수수료를 지급해 가며 여객기를 키웨스트 공항에 주차시켜 둘 수밖에 없었다. 오버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들은 여객기를 부동산 거부인 돈 솔디니에게 차례로 매각했다.
솔디니는 1950년대 말, 18세의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하바나로 들어가 카스트로 형제가 바티스타 정권을 상대로 벌인 혁명전쟁에 참여했던 열혈 미국인이었다.
쿠바 혁명 후 미국으로 돌아와 부동산 갑부가 된 그는 자신이 구입한 DC-3기와 AN-24기를 하바나 측에 돌려주기 위해 ‘혁명의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를 직접 만나 과거의 정비기록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카스트로는 고물 비행기를 되찾는 것보다 미국이 피랍기 처리과정에서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증거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어 했다.
이 때문에 이들 두 대의 비행기 역시 플로리다주의 한 사설 격납고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길고 긴 동면에 들어갔다.
캘리포니아에서 제작된 DC-3 피랍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솔디니는 언젠가 플로리다의 지역 박물관이 격동의 한 시대를 보낸 비행기에 관심을 보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