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초기 이민 선조들의 첫 터전이었던 중가주 다뉴바시를 찾은 조성호(50)ㆍ크리스티 조(48)씨 부부가 현지 한인장로교회 터 앞의 이민 선조 기념비의 내용과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장지훈 기자>
■이민 선조들의 고향
미 본토 첫 한인 정착지인 다뉴바와 리들리시가 속한 툴레어 카운티는 동쪽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서쪽은 지평선이 펼쳐지는 농토지대다. 이곳은 지금도 캘리포니아 농업을 상징하며 낙농업, 오렌지·포도·복숭아 등 과일 재배지로 유명하다.
킹스캐년·세코이아캐년을 동쪽 병풍으로 삼아 자리 잡은 다뉴바시는 1906년 형성됐다. LA에서 5번 프리웨이를 타고 99번으로 갈아탄 뒤 3시간30분쯤 달려 115번 출구에서 내리면 디뉴바와 리들리시가 나온다.
115번 출구에서 동쪽으로 8마일 정도 달린 뒤 다뉴바시에 도착할 때면
‘그 옛날 이민 선조들은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까’ 하는 놀라움과 의문이 든다.
그러다 말 그대로 광활한 시골 농장지대를 수놓은 수십만 그루의 배꽃, 복숭아꽃, 포도나무를 볼 때면 이민 선조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수천년 동안 농경사회에서 살아온 한인에게‘ 땅’은 때론 목숨보다 귀했다. 평생 땅 한 마지기 얻기 힘들었던 한인에게 다뉴바와 리들리의 비옥한 농토는 입이 떡 벌어졌을 터. 거기에 봄이면 만개하는 익숙한 과일나무와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자에서 농장주로 아메리칸 드림 일궈
그렇게 다뉴바에 정착한 이민 선조는 300여명. 이들은 다뉴바시 정착을 시작으로 중가주를 일대로 한인타운을 확장시켜 나갔다. 정착 초기 선조들은 대부분 하와이 경험을 살려 농장 노동자로 일했다. 한국에서 사진신부를 데려와 가정을 이룬 가장들은 악착같이 일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1910년대부터 이민 선조들은 다뉴바와 리들리에서 코리안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왕족 출신 이재수는 한인 노동자들을 모아 농번기 복숭아, 포도,오렌지 등 과일 따는 계약을 체결했다. 데라노 아메리카 은행장은 두 손이 자신이 가진 담보라는 한시대의 말에 탄복해 1,000달러를 빌려줬다. 훗날 한국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애국지사 한 시대는 농장주로 성공했고 한인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처럼 농장주로 성공한 한인들은 후배 이민자의 정착을 도우며 한인타운을 키웠다.
다뉴바와 리들리시 정착 선조들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조국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이들은 1912년 10월15일 미주 최초의 한인장로교회(204W O St, Dinuba)를 세우고 1945년 광복 때까지 조국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선조들은 매년 3.1절을 기념하며 미국인들이 일본인과 동일시할 때면 끔찍이 싫어했다. 또한 고된 노동으로 번 월급의 10분의 1 이상을 독립의연금으로내놓으며 수천달러를 상해 임정에 보냈다.
■한인 정체성 교육과 자긍심의 현장
오늘날 다뉴바와 리들리시는 한인이민 선조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기념
한다. 지난 3일 3.1절 1주년 기념 시가행진 재연행사에서 만난 중가주 한인 역사연구회 차만재 회장은 “100년 전 한인들은 농사꾼으로 각종 인종차별을 견디며 악착같이 일했다”며“ 이제는 리들리시와 다뉴바시가 그분들 역사를 자랑스러운 시의 역사로 기념한다”고 반겼다.
최근 3.1운동 사료 중 유일하게 동영상과 사진으로 공개된 다뉴바 한인사회 활동은 후손들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1920년 3월1일, 다뉴바시 한인장로 교회에 모인 300여명의 이민 선조들은 비가 내림에도 3.1절 독립운동 1주년 기념행진을 강행했다. 그 시각 윌로우스 한인 전투비행사 양성소를 떠난 이용선 비행사는 폭우를 뚫고 프레즈노
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당시 한인 노동자들은 모처럼‘ 양장’을 차려입고, 한복을 입은 아낙들은 자녀들과 행진 대열에 섰다. 한인 300여명은 고진 노동으로 번 돈을 십시일반 모아 기마대와 차량 20여대를 동원했다. 향후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한 간호사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 대열을 이끌었고 이민 선조들은 다뉴바시 메인거리 L 스트릿 약 1마일을 행진했다.
이처럼 다뉴바시에는 한인들의 이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92년 만에 열린 3.1절 재연행사를 구경한 거주민 버지니아 로드리가스(62)는“ 내가 어릴적 한인들은 미용실과 트럭 회사, 식당 등을 경영했다”며“ 지금 이곳에서 한인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들은 다뉴바
시 역사를 만든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3.1절 행진 재연행사 가슴 뭉쿨
한인 2세 박별양
지난 3일 92년 만에 열린 1920년 3.1절 1주년 기념 시가행진 재연행사
에는 중가주 한인 2세들도 대거 참여했다. 인근 프레즈노에서 온 청소년들은 이민 선조들이 100년 전 다뉴바와 리들리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나서고 지역 일원으로 이바지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날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전통복장을 입고 온 대학생 박별(21^사진)양은“ 어릴 적부터 아빠가 일본의 침략 만행과 이에 맞서 싸운 한
인 이민 선조의 활약상을 많이 들려줬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민 선조들이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사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박별양은 다뉴바와 리들리 이민 선조의 개척정신과 그들이 일군 역사가“매우 자랑스럽다”고 활짝 웃었다.
박양은“ 한인 이민 역사는 오늘날 미국에 사는 우리가 누구인지 가르쳐 준다”며 “우리 스스로 역사를 망각하면 한인 정체성과 코리안 커뮤니티는 존재할 수 없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한인들 역사 기념비 자랑거리
마이크 스미스 다뉴바 시장
인구 2만3,000여명이 거주하는 다뉴바시는 지난해 한인들이 장로교회
터와 3.1절 행진거리에 세운 한인역사 기념비를 ‘다뉴바시의 영원한 역사기념물’로 지정했다.
마이크 스미스 시장(사진)과 시 관계자들은 한인 이민 선조의 굴하지 않은 정신과 한인사회 성장을 기렸다. 스미스 시장은“ 이민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다뉴바시를 찾는 한인 모두를 환영한다”며 “우리 시가 한인들의 뿌리 현장인 것이 자랑스럽고 그 ‘역사’를 영원히 지켜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스 시장은“ 100년 전 한인들은 다뉴바시 역사와 문화를 함께 만든 주인공”이라며“ 당시 미국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나선 한인들의 정신을 살려 한미 우호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다뉴바시 제인 앤더슨 부매니저는“ 한인에게 참 중요한 역사적 현장인 다뉴바시는 한국 지방자치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싶다”며 “(한인 이민자들의 고향인)남한이나 북한 지역 모두 환영한다”고 말했다
< 김 형 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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