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였다가 자매가 된 두 명의 워쇼스키가 감독한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는 ‘데자뷔’가 스토리 반전의 계기로 등장한다. ‘매트릭스 Ⅰ’(1999)에서 검은 고양이가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한 뒤, 주인공 일행에게 위기가 닥치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기시감(旣視感)으로 번역되는 데자뷔(dj vu)’는 처음 겪는 일인데도 그 이전에 같은 경험을 한 것처럼 느끼는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그 이전 수많은 인류가 겪었을 이 경험을 체계적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는 1900년 프랑스 의학자 플로랑스 아르노였다. 이후 에밀 보아락이라는 학자가 ‘데자뷔’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는 뇌의 신경화학적 요인에 의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현대 과학은 데자뷔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여러 가설이 경합 중인데, 가장 유력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인간 시각의 구조적 오류와 연관을 짓는다.
■이 가설은 인간의 시각 정보 처리 과정에 주목한다. 사람은 0.025초 내에 발생한 사건은 동일 사건으로, 이를 넘어서면 별개의 것으로 인식한다. 양쪽 눈에 인식된 정보가 두뇌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시차가 발생할 경우, 우리 뇌가 데자뷔로 처리한다고 설명한다. 잘못된 정보처리에 대해 잘못된 기억이란 신호를 보내는, 우리 뇌의 건강성을 입증하는 기제가 ‘데자뷔’라는 것이다.
■데자뷔는 국제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2017년 6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난맥상이 떠오른다.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녹음기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의 ‘한미 FTA 재협상’ 발언을 “합의 외의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안이한 대응은 FTA 재협상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농산물 수입, 방위비 분담금 등에서 한미 간 인식 차이가 뚜렷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8년 만의 데자뷔에 주목해야 한다. 예정된 방미에서 문 전 대통령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자신의 저서 ‘억만장자처럼 생각하라’에서 밝힌 게 사실이라면, 트럼프는 이번에도 간단한 메모장만 들고나온 뒤, 순식간에 간결한 화법으로 거친 제안을 쏟아낼 수 있다.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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