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장쑤 성의 작은 마을 푸양의 수령 디 공(본명은 디 젠지에, 630-700)은 살인사건 셋을 잘 처리한다. 그 중 하나는 절간의 비리와 관련된 조직적인 부패 사건. 당시 황제는 불교를 외세의 확장으로 간주하며 유교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기원전부터 전파돼 뿌리를 내린 불교를 완전히 타도할 수는 없는 상황. 고민이 깊었다. 백성들도 불교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디 공이 사건을 처리하고 비리를 밝히자 시민들이 격노한다. 디 공은 수비대를 보내 잡힌 승들을 보호하고 감옥에 가두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성난 시민들이 그들을 이미 죽인 것이다.
현명한 정치가였던 디 공은 그 뒤에 이어질 시민들의 ‘무질서와 약탈’이 염려되었다. 그는 자신을 환호하는 시민들의 연호에 싸늘하게 반응한다. 그러고는 사방에 방을 붙인다. 죄인의 처벌은 나라만의 고유 권한이며, 따라서 시민들의 폭력행사는 엄중히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관복을 정제한 그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지어 거리로 나선다. 그들의 행렬은 천천히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으로 이동해 제사를 지낸다. 향을 사르고 피로 물든 마을의 상황에 대해 엎드려 사죄한다.
다음에 그는 공자의 사당으로 행차해 향을 피워 올리며 성인의 높은 덕을 기린다. 그러고는 다시 군신각으로 가서 장엄한 제사를 지낸다. 이제 시민들은 더 이상 디 공을 연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쥐죽은 듯 조용히 행렬을 지켜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이상의 소요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선 디 공은 비로소 관아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명나라 때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수사관이었던 실존 인물 디 젠지에와 역사 속의 실제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소설의 한 부분이다. 600여 년 전이 배경이지만,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연일 약탈자들의 무도한 소식을 접하다 보니 절로 생각나는 소설이다.
예나 지금이나 양상이 같다면 그만큼 사건의 기반이 인간의 가장 밑바탕에 깔린 욕망에 기인한 것이라는 뜻일 거다.
진화도 어렵고 문명도 힘을 쓰지 못하는 부분. 그것을 잘 이끌고 다스려 적어도 마구 발현되지는 않게 만드는 게 지도자의 필수조건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도 험한 사건을 일으키니 감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지도자들이 포퓰리즘이나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적 어법에만 매몰되면 달성할 수 없는 먼 덕목이다. 더구나 정치 지도자 자신의 욕망이 부끄럼없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니…….
그래서 시민들의 제사가 빛나 보인다. 바람에 나부끼는 수많은 포스트잇. 쌓이는 꽃다발. 잊지 말자는 모임들. 그것이 우리가 드리는 제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앞에 선 지도자들에게 그렇게라도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싶다.
수령이 장엄하게 행차해 백성의 무도한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비는 제사를 지내면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용해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같은 시민들 중에도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다. 민주사회다 보니 한 목소리라는 건 불가능하고, 또한 위험하기도 하다.
정치도 종교도 이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건전한 norm을 세우고 쌓아가는 것, 그것을 할 수 있는 초인이 그립다. 그는 위대한 자가 아니다. 대의를 위해 잠시라도 개인적 욕망을 억누를 줄 아는 자, 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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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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