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아침, 동네는 마치 묽은 쌀뜨물에 잠긴 듯하다. 산 너머 바다에서 밤새 밀려드는 안개 때문이다. 6월까지 누릴 수 있는 수묵화 같은 아침 풍경이다. 오래전 이맘때쯤이면, 식전에 시어머님을 재촉해서 안개 자욱한 뒷산 흙길을 걸으러 나갔다. 까슬하고 찹찹한 흙의 감촉을 느끼고 싶어 맨발로 걷게 되면 어머님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발등에 걸려 십 미터 못 가서 다시 신발을 신었다.
걷는 걸 그리 즐기지 않던 어머님이 그 산책을 따라나선 건,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까지 살던 고향 평안북도 태천군의 산과 강, 그 위를 덮던 안개가 이곳 안개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김신용 시인의 시 <부빈다는 것>의 한 구절처럼 “제 몸 풀어 자신을 지우는” 6월의 안개는 우리 두 사람에게 향수이고 신비였다.
해가 들기 전 풀숲 거미줄에 조르르 매달린 이슬이나 흰 야생 백합의 꽃잎에 소복한 이슬방울이 안개 속에서 오히려 더 잘 보였다. 산등성이며 나무는 뭉개진 배경처럼 흐릿했지만, 그 속에서 생의 디테일은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왔다. 어떤 기억이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 순간을 지금도 사는 것 같다.
전쟁통에 남하하신 시어머님이나 친지 어르신들의 이야기에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고장 나지 않고 녹슬지 않는 시계 초침 같은 시간이 느껴지곤 했다. 세상에나,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아직도 무서우세요? 라고 나는 생전에 어머님께 여쭙곤 했다. CT Scan이나 MRI 촬영 때의 기계음이나 밀폐된 공간, 큰 소리에 몹시 민감하셨다. 전쟁 중에 오빠 둘을 잃었고 한 분은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상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고약하고 지독한 것을 알겠다.
흥남부두 철수 때 빅토리호에 몸을 싣고 혈혈단신 남하한 사돈뻘 되는 어르신의 일생 또한 헤어진 가족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이었다. 마음은 두고 몸만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향. 그야말로 ‘떠밀려서 디아스포라가 된’ 세월이었다.
한국에 계신 나의 어머니는 꿈을 잘 꾸는 편이다. 간밤의 꿈을 기억하시곤 하는데 그중에는 초등학생 시절 겪은 한국전쟁의 한 장면도 있다. 경남 시골 마을에서 목격한 미군과 인민군 간에 벌어진 참혹한 장면은 여전히 몸서리치게 만든다. 밤새 산을 넘어 피난 가던 기억은 마음속 시계로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6월의 푸른빛은 길목마다 넉넉한 그늘을 짓고 있는데 뉴스 화면에는 또 다른 전쟁의 소식으로 가득하다. 죄 없는 목숨의 신음, 폭격과 살인의 참상에 마음이 짓눌린다. 보복 전쟁으로 번지게 될까, 걱정도 되지만 세상이 인류가 그리 호락호락 역사를 마감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죽이고 파괴하는 전쟁의 시계는 제발 멈추기를….
뒷마당 살구나무 열매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러 나갔다가 새 둥지 하나가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우리 마당의 들풀을 칭칭 돌려 엮고 흰 솜을 사이사이 메워 만든 꽤 정교하고 예쁜 밥공기 모양이었다. 마당에 솜 조각이 날아다닌다고 툴툴댔었는데, 오늘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아, 그런데 새 둥지는 왜 바닥에 엎어져 있는 걸까. 둥지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 버리고 간 건지 빼앗긴 건지… 속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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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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